올해 36곳 심사 철회 63% 증가
뻥튀기 상장 논란 이후 기준 엄격
안되면 말고 식 상장 도전 급증
상장 절차를 밟다가 중도 포기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대다수가 턱걸이로 요건을 맞춰 상장 심사를 신청한 기업들이다. 반도체 기업 파두의 뻥튀기 상장 논란 이후 거래소의 상장 심사 문턱이 높아진 것도 영향이 컸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상장예비심사 청구 후 철회한 기업(이전상장, 재상장 제외)은 총 36곳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기간 22곳과 비교하면 63% 급증한 규모다. 올해 상반기 19곳에 이어 지난 7월과 8월 각각 3곳, 9월 4곳에서 이달들어 7곳으로 치솟았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의 심사 철회는 거래소 심사 과정에서 잠정적 미승인 통보를 받은 뒤 이뤄진다. 공식적으로 '미승인' 딱지가 붙기 전 자발적으로 심사 철회 후 보완해 상장에 재도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질적으로 거래소 심사는 통과하지 못한 셈이다.
심사 철회 기업들은 제조업의 비중이 높다. 특수 목적용 기계 제조기업인 이노테크와 방송장비 생산 업체인 엔더블유시는 이달 11일에 각각 상장예비심사를 철회했다. 리비콘(10월 2일)과 애니원(9월 9일)도 상장 절차를 접었다.
플랫폼 기업들도 심사 청구서를 거둬들였다. 크리에이터 후원 결제 서비스 기업인 투네이션과 머신러닝운영 플랫폼 '런웨이'를 개발한 마키나락스는 지난 8월 19일과 이달 11일에 각각 심사를 철회했다.
증권가에서는 상장 자격이 모호한 기업들이 공모주 열풍에 힘입어 상장예비심사 청구에 나섰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상장 후 공모가 대비 주가가 급등하는 '공모주 호황기'가 이어지면서 상장예비심사 청구가 증가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경준 혁신IB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상장을 철회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매출이 적거나 기술특례상장으로 심사를 청구한 기업들"이라며 "지난해 연말부터 기업공개(IPO) 업체들이 상장만 하면 수요예측과 일반 청약에서 흥행을 기록하고, 상장 첫날 주가가 급등하는 것을 보면서 우선 심사 청구서를 넣고 통과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식의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상장 예비심사에서 떨어져도 과태료를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며 "앞으로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두 사태 이후 한층 엄격해진 거래소 심사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파두는 1조원이 넘는 몸값을 자랑하며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지만 3개월 만에 실적 쇼크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후 거래소의 상장 심사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는 게 관계자들이 전언이다.
실제 지난 6월 거래소는 이노그리드의 상장예비심사 승인 결과를 취소했다. 상장예비심사 승인 결과를 번복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이효섭 연구위원은 "파두 사태 이후 IPO 심사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거래소의 상장 심사 기조도 엄격하고 꼼꼼해졌다"며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까다롭게 상장 제도를 손보려는 움직임도 있어 거래소의 심사 기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ippo@fnnews.com 김찬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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