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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송미디어 시장은 위기..낡은 규제 철폐해야"[기울어진 미디어 산업 ④]


[파이낸셜뉴스] "한국 방송미디어 시장은 현재 위기다. 최악의 경우, 국내 산업 경쟁력은 급격히 악화되고 재원이 이탈하면 방송미디어 산업 전반의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한국 방송미디어 시장의 실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진단했다. K-콘텐츠가 글로벌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과 달리 국내 방송사업은 지난해 기준, 10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최악의 '한파'를 맞았다. 이유는 다양하다. 2000년 이후 바뀌지 않은 낡은 법 규제는 혁신을 도모하는 국내 사업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높은 인지도와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과의 경쟁에선 한없이 열세다. 이들은 전통적인 방송법 규제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플랫폼과의 역차별 문제 해결, 법 개정을 통한 규제 완화, 디지털세 도입 등을 대응책으로 꼽았다.

파이낸셜뉴스는 성장 한계에 봉착한 한국 방송미디어 시장을 진단하고 위기를 효과적으로 돌파할 방법을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23일 좌담회에는 이헌율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 전문위원,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BK교수가 참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국내 방송미디어 업계가 처한 상황을 짧게 진단 부탁드린다.

▲홍종윤 교수=성장 한계에 봉착해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나 구글처럼,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글로벌 사업자들은 국내 사업자들이 쫓아갈 수 없는 전략으로 국내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2000년 이후 바뀌지 않고 있는 법 규제는 국내 사업자들의 혁신 경쟁을 가로막는 이유 중 하나다. 글로벌 기준에 맞게 규제를 빨리 정비하고, 국내 미디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이헌율 교수=시장 환경이 변하지 않는데 투자가 늘지 않는 이상,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관 수석전문위원=지난해는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있었던 1997년과 1998년을 제외하고 최초로 방송사업 매출이 줄어든 해다. 유료방송 가입자 수가 전기 대비 감소한 최초의 해이기도 하다.글로벌 기업과 국내 방송사 간 비대칭적인 경쟁 환경이 주요 원인중 하나다.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구조적이고 지속적이라는 점이다. 국내 산업 전반의 붕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위기의 가장 큰 이유가 넷플릭스 등 해외 미디어 업체들과의 경쟁 열세라고 보시는지
▲유홍식 교수=결국 자본력의 차이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미디어 기업은 방송 분야의 경우, 매출 10조 이상이면 방송사업을 할 수 없다. OTT공룡인 넷플릭스와 달리 우리나라 기업들은 전부 다 '구멍가게'인 이유다. 물론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잘 만든다. 제작비가 많아서 방송사들은 못하는 것들을 넷플릭스는 한다. 그러면서 콘텐츠가 다양화됐지만 제작비도 너무 비싸졌다. 시장은 이미 비싸졌는데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는 그만큼 투자를 할 수 있는 미디어 기업이 없다.

▲홍종윤 교수=넷플릭스의 국내 투자는 양날의 검과 같다. 한류 콘텐츠 붐 조성에 일조했지만, 국내 콘텐츠 생산, 유통, 소비 생태계를 교란하는 결과도 낳았다. 한국이 해외 콘텐츠 업체의 하청 기지가 되고 있다는 우려도 사실이다. 단순 하청에 그치지 않으려면 넷플릭스 등 해외 업체도 일차적으로 국내 미디어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선순환 구도를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하는 묘안이 필요하다.

▲이종관 수석전문위원=국내 이용자 1인당 유튜브 월평균 이용 시간이 무려 40시간에 달한다. 독점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국내 방송미디어 사업자가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들은 국내 방송미디어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규제의 비대칭성에 따른 구조적인 불공정경쟁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산업을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은 뭔가
▲유홍식 교수= 낡은 규제 철폐다. 역대 정부가 규제 철폐를 이야기 해왔지만 미디어 규제는 변한 게 없다. 방송법은 2000년대 쯤 만들어진 법으로 수십년을 버티고 있다. 현실의 미디어 상황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방송법 규정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은 지상파 방송 지분을 10%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초기에 설정된 금액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얼마나 성장했나. 이에 맞춰서 기준을 20조원 정도로 늘려야 한다. 충분한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야 한다.

▲이헌율 교수=글로벌 기업에 대응할 수 있는 자본 규모를 만들어줘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벗어나 산업적 관점에서 우리 미디어 기업들의 규모를 키워서 내수 시장을 활성화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종관 수석전문위원=채널 편성 및 약관 규제, 광고 및 심의 규제에 대해 전반적인 완화가 필요하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흑백요리사는 자본도 있었지만 방송 심의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 자유롭고 주목도 높은 연출이 가능했다. 대규모 PPL 유치에 따른 제작비 유치도 가능해 기존 지상파나 유료방송이 만들기 어려운 콘텐츠를 제작했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은 이런 콘텐츠를 제작할 역량을 갖춰도 규제 허들을 넘기 어렵다. 플랫폼 사업자는 경쟁력있는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고, 콘텐츠 사업자는 창의적이고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아무래도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과의 경쟁 열세에 대한 것도 구조적 대응이 필요한데
▲홍종윤 교수=구글이나 넷플릭스 등 '빅테크'들이 사용료와 매년 국내에서 조세 회피 논란이 벌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간 형평성 문제가 된다. 국외 사업자들이 국내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 매출과 이익에 대해 국내 사업자에 준하는 규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유현재 교수=국내 통신업계 등이 해외 사업자에 소송을 수행하는 것도 해법 중 하나다. 망 사용료 얘기다. 다툼이 아니라 상식적인 요구로 봐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 상당한 트래픽을 발생 시키고 있으니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하는 것 아니냐. 망 사용의 파이가 늘면, 당연히 수많은 소비자들은 간접 피해를 보는 거다. 망은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국가나 정부가 대신 싸워줘야 한다.

▲유홍식 교수= 해외 빅테크 업체들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방안이 현재 아무것도 없다. 국내법으로 규제를 만들어내면 새 규제가 항상 국내 사업자에만 적용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규제의 역차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한 규제 철폐가 필요하다. 사업자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것은 안된다고 규정하고, (만약 어기면) 강하게 처벌하는 반면 나머지는 풀어주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형 디지털서비스법(DSA)이나 디지털시장법(DMA)에 대해선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홍종윤 교수=유럽연합(EU) 주도로 도입되고 있는 DSA, DMA는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잡게 될 확률이 높다. 우리도 이에 준하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럽의 대응이 미국 중심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대한 통제력 확보와 시장 방어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도입은 좀 더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역차별 우려를 최소화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유현재 교수=최소한 거대 플랫폼 회사에게 한국의 기본적 방향성, 지향점이 변했음을 알려야 하는 게 맞다. 지금처럼 특정한 사건이 벌어지면 잠시 관심을 두다가 또 흐지부지되는 분위기 반복되면 관련 불합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정부가 방송채널사용사업(PP)에 대해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고, IPTV의 PP 겸영 제한을 폐지했는데 앞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이종관 수석전문위원=정부가 규제 완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는 높게 평가한다. 다만 PP 등록제 자체가 고강도 진입규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고제로 바꾼다고 해서 신규 PP의 진입이 크게 증가할것 같지는 않다. IPTV의 PP 겸영 제한 폐지는 PP 시장 및 콘텐츠 시장에 자본 유입 및 투자가 확대되는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플랫폼 사업자의 콘텐츠 시장 진출 유인 장치, 예컨대 IPTV 사업자의 콘텐츠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나 방발기금 지원 등을 추가로 고민해 봐야 한다.

▲유현재 교수 =시장은 다양해지고, 산업도 더 클 여지가 있다.
그러나 콘텐츠 제작업체들이 경쟁은 곧 클릭이고 노출이라는 생각 속에 더욱 선정적이며 엽기적으로까지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부분 정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방이나 표절, 선정성, 폭력 등 그런 말초적 요소들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할 것이다.

yjjoe@fnnews.com 조윤주 주원규 구자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