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에 방영된 작품은
하반기 비해 큰상 못받아
연말고과도 공평성 잃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해마다 연말 시상식 시즌이 되면 방송가에서는 '상반기 드라마의 저주'라는 말이 떠돈다. 상반기에 방영된 작품은 하반기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상 확률이 낮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굵직한 상은 대부분 하반기, 특히 시상식 전후에 방영된 드라마의 몫으로 돌아간다. 어지간히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면 상반기 작품은 연말이 되었을 때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건 공정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특별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최신편향(recency bias)'이 작동하는 것이다. 최신편향은 가장 최근의 정보나 경험에 지나치게 가중치를 두는 심리를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모든 경험을 공평하게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고 가장 강렬했던 순간(peak)과 가장 마지막 순간(end)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카너먼 교수는 이를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으로 명명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생한 경험과 선명한 기억을 토대로 판단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팩트와 상당히 큰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말에 고과를 하면 1월부터 12월까지 성과를 고르게 반영하기보다는 아무래도 하반기가 리더의 머릿속에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평가 시기를 전후로 성과를 냈거나, 매우 인상적인 이벤트가 있었거나 또는 최근 즐거운 경험을 공유한 직원에 대한 평가는 더 긍정적으로 인식된다. 이때도 어김없이 확증편향이 개입한다. 평가점수를 더 높게 줄 근거를 기어이 찾아내고,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한다.
UCLA 심리학 교수이며 기억전문가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박사는 과거 경험 속에 거짓 기억을 주입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진짜로 있었던 기억으로 떠올렸다. 바로 '기억착각(illusion of memory)'이다. 기억착각은 단지 기억이 헷갈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감쪽같이 속을 만큼 사실로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같은 사건을 보고 서로 다른 기억을 재생하기도 하고, 거짓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불완전한 기억의 속성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이것만은 확실하다고 할수록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어쨌든 기억에 의존한 판단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같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기억이 서로 다를 때가 있다. 리더는 분명하게 지시했다고 기억하는데, 부하직원은 기억에 없거나 혹은 아예 지시사항을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오래 시시비비를 따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하직원 쪽이 바로 꼬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리더는 부하직원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리더의 기억이 맞는 걸까. 전문가들은 오히려 리더의 기억이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이는 리더가 부하직원들보다 거시적인 틀로 정보를 이해하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회의 중 실시간 정보를 기억하는 과정에서 리더는 실제로 등장하지 않은 정보를 개입시켜 이해하고 다시 기억으로 저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비록 기억의 큰 틀은 공유하고 있을지라도 세밀한 부분에서는 기억의 왜곡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리더들은 단지 회사 이름이 읽기 편하거나, 보고서의 종이 색과 글씨체 혹은 주요 인용 출처가 읽기 쉽다는 이유로 보고서의 내용을 더 신뢰하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보고서를 검토한 리더는 논리적인 주장에 의해 설득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용보다는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소한 다른 요인에 영향을 받은 직관적 판단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리더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해 '내 기억이 맞다'고 확신한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연되는 장면들을 거짓이라고 의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리더의 원맨쇼에서 벗어나 집단지성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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