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공직 시절, 다른 나라의 정책과 제도를 참조하곤 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래서일까. 최근 중견기업 개념 도입과 지원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개정된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접하는 심정은 남달랐다. 한국의 중견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본 사례는 우리 정책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추진되어 왔음을 증명한다. 이는 지난여름 일본의 담당자들이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를 방문했을 때 직접 시인한 바다.
중견기업 정책은 2010년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육성전략'에서 시작했다. 토대가 되는 중견기업특별법은 지난해 3월 한시법 제한을 떨어내고 상시법으로 전환됐다. 전체 기업의 1.3%인 약 5576개에 불과한데도 매출 14.4%, 고용 12.8%, 수출 18%를 책임지는 중견기업의 위상을 떠올리면 당연한 결과였다.
중견기업특별법 제정 이후 10년, 변화는 눈부시다. 기업은 2979개사에서 5576개사로, 매출은 483조원에서 961조원으로, 고용은 90만명에서 159만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업력은 평균 30년에 가까운데, 창업에서 중견기업 진입까지 통상 17년 이상 걸린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숫자다.
기업 평균 지식재산권 40건, 제조기업 평균은 80건에 달한다. 중견기업의 경쟁력인 전통과 기술력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중견기업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는 모양새다. 작년 1월 정부가 '중견기업 성장촉진 전략'을 통해 2030년 기업 1만개, 고용 250만명, 수출 2000억달러를 목표로 선언했지만, 만만찮아 보인다. 소부장, ICT, 바이오 등 모든 분야에 포진한 중견기업의 역할을 감안하면 경제 전체의 위협일지도 모른다. 경직적인 기업승계 제도, 대·중소기업 중심 세제와 금융 체계, 노동환경 등 제반 분야의 과중한 규제 등 중견기업 경영 부담을 가중하는 상황을 시급히 타개해야 할 까닭이다.
지난 6월 3일 발표된 '기업성장 사다리 구축방안'에는 경제 역동성 제고를 위한 정부의 의지와 고민의 흔적이 여실했다. 특히 중견기업의 경영환경을 살피는 크고 작은 변화에서는 산업부 후배들이 감당했을 불면의 밤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졸업 유예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는 등 기조는 아직 중소기업 부담 완화에 머물렀고 중견기업 R&D, 투자, 고용확대 세제지원 기준은 매출 3000억원 혹은 5000억원 미만 그대로였다.
여러 정부에서 이어져 온 성장사다리 정책의 가치를 두 번 말할 필요는 없다. 도약과 연착륙, 성장과 재도약의 원활한 연결을 위해서는 중소에서 중견, 대기업으로 성장할 때 부딪히는 장벽을 허물고 단계에 걸맞은 경쟁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은 물론 정책적 균형이 필수다. 이 빠진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오를 도리는 없다. 피터팬증후군의 희비극을 끝내려면 단절의 연속이 아닌 흐름의 원리로 기업 성장을 바라봐야 한다. 중소기업의 현실을 폭넓게 다독이고 대기업의 혁신을 견인하면서도, 어제의 중소기업이자 내일의 대기업인 중견기업의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강화하는 정책 노력에 좀 더 과감해져야 한다.
다음 달에 열 번째 '중견기업인의 날'기념식이 열린다. 이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심리학에 피그말리온 효과가 있다.
타인의 기대와 관심이 클수록 능률이 오르고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피그말리온은 지극한 사랑으로 차가운 조각상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화시킨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다.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인, 국부창출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가 살아갈 터전을 일구는 핵심 주체들이 가장 잘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다 큰 응원과 지지를 제안한다.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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