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숨프로젝트 대표
우연한 기회에 이태원 '마이 알레 리빙룸'이란 작은 공간에서 흥미로운 '소리' 전시를 보았다. 소리를 보통 듣는다고 하겠지만, 이번 전시는 예술적 공간과 소리를 함께 경험하는 그야말로 보는 전시였다.
1984년 작곡된, 에스토니아 출신 현대음악가 아르보 패르트라는 변방의 음악가의 한 장의 음반이 흰색의 종이 질감 천으로 작은 동굴과 같이 만들어진 특별한 공간 곳곳에 설치되듯 기획됐다.
또한 음악 이외엔 작곡가의 흑백사진 몇 장과 책들이 있었고, 이 현대음악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그의 작품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침묵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그라비티'에 나온 음악도 있어 몇 개의 곡은 조금은 알려지기도 했다. 각각의 음악을 듣는 공간은 아주 섬세하게 큐레이팅된 오디오 시스템으로 구성됐고, 50년 된 카세트테이프부터 대형 오디오까지 준비됐다.
단지 한 달간 예약으로 운영되고, 이 작은 전시에 과연 어떤 관객이 몇 명이나 올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지만 나의 의문과는 반하게 그곳엔 이미 진지하게 그 음악에 빠져 있는 멋진 개인들이 있었다. 안내자는 곡을 잠시 설명하고, 이 음악을 듣는 동안만큼은 휴대폰이나 녹음, 사진을 뒤로하고 집중해서 듣기를 권했고 관객들은 그 침묵 안에서 음악을 만났다. 문득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고 4분33초 동안의 침묵, 또 사람들의 숨소리 등이 만들어지는 그 모든 것을 음악이라고 선언한 1952년의 존 케이지가 생각난다. 그 어디에도 절대적 침묵의 공간이 없고, 공연장에 있는 소음까지도 음악이라는 역설을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도슨트 투어를 약 5만원이라는 금액의 티켓을 기꺼이 사서 이 작은 곳에 들어와 몰입하고 명상하며 감상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도 우연히 미팅을 위해 들른 곳에서 예상치 않게 만난 귀한 예술적 사치의 순간이었다. 예술이라는 것이 가다가 멈추게 되고, 작품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분명 이러한 경험은 예술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는 무엇인가가 된다.
요즘 아파트, 리조트, 레스토랑 홍보나 디자인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수식어가 '예술'과 '럭셔리'라는 단어들이다. 사실 어떠한 용도와 기능적 합리성만 찾는다면 아마도 우리 삶에서 없어도 살 수 있는, 가장 불필요한 것들이 이 두 가지이리라. 하지만 이제 우리의 삶은 이러한 예술적 경험과 새로운 개념의 럭셔리를 원한다. '럭셔리'에 대한 정의는 물론 시대와 장소와 다양한 사회마다 다르게 접근되겠지만 기본적 개념은 명품 소비나 고급 물질적 자산, 즉 비싸고 희귀한 것들에 대한 소유였다. 하지만 이 정의는 지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삶에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MZ세대에게 럭셔리의 개념은 어떤 물질적 소유를 넘어서는 더욱 깊이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것, 자기의 취향을 넣은 더욱 개인적인 것, 남들과 동일하지 않은 차별화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들로 급격히 변해가고 있다.
또한 사회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 없는 무분별한 고급에 대한 추구보다는 윤리적 의식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식을 요구한다. 그러한 면에서 예술과 럭셔리는 새로운 가치를 발현한다. 아마도 예전 같으면 운영되기 힘든, 특별한 전시들과 새로운 경험들은 이제 다시 중요한 가치로 꽃피기 시작한다.
이지윤 ㈜숨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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