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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페라리 와라"...막연했던 우승, 전설의 선택은 [권마허의 헬멧]

1995년 정상의 자리에 오른 슈마허
다음해 '전통 강자' 페라리로 이적
초기 차 문제로 우승권 멀어졌지만
끊임 없는 도전으로 7라운드 우승

세계 3대 스포츠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인기가 많지만 유독 국내에는 인기가 없는 ‘F1’. 선수부터 자동차, 장비, 팀 어느 것 하나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는 그 세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격주 주말, 지구인들을 웃고 울리는 지상 최대의 스포츠 F1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무거운 주제들을 다양하게, 그리고 어렵지 않게 다루겠습니다. F1 관련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를 원하신다면, ‘권마허의 헬멧’을 구독해주세요.
[파이낸셜뉴스] 미하엘 슈마허가 1995년 '베네통'에서 선수로 뛰며 정상의 자리에 오르자, 그를 데려가려는 팀도 많아졌습니다. F1의 전통 강자 페라리도 그 중 하나였죠.

"너, 페라리 와라"...막연했던 우승, 전설의 선택은 [권마허의 헬멧]
미하엘 슈마허(왼쪽)가 2000년 10월 8일 일본 스즈키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후 기뻐하고 있다. 미하엘 슈마허 인스타그램 캡처
전설, 페라리로 이적하다
"너, 페라리 와라"...막연했던 우승, 전설의 선택은 [권마허의 헬멧]
페라리 로고. 뉴스 1
가장 최근 열린 F1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우승자(카를로스 사인츠)를 배출할 정도로 강력한 페라리지만, 1995년 당시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해 그랑프리 우승도 캐나다 몬트리올(프랑스 출신 쟝 알레지), 단 한 차례가 전부였습니다. 1995년 치러진 17라운드 가운데 베네통이 우승을 가져간 횟수는 과반을 훌쩍 넘긴 11회입니다.

주변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페라리가 놓여 있는 힘든 상황이 오히려 슈마허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어릴 적 가난했던 탓에 낡은 고카트를 탔지만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그의 승부욕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그는 아마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던 페라리에서 우승한다면 정말 전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지인들도 "폐타이어로도 우승했는데, 페라리에서 못할 것도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1996년, 슈마허는 결국 페라리에 입단하게 됩니다.

이적 후 그의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찔렀습니다. 어디든 그가 가는 곳엔 카메라가 따라 붙었고, 베네통 시절보다 더 많은 팬들이 사진과 사인을 요청했습니다. 참고로 F1 역사상 가장 오래된 팀 중 하나인 페라리는 팬층이 아주 두껍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페라리를 종교처럼 생각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관심과 압박은 비례관계
"너, 페라리 와라"...막연했던 우승, 전설의 선택은 [권마허의 헬멧]
루카 몬테제몰로 페라리 회장. 연합뉴스
따라오는 관심만큼 압박감도 커졌습니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당시 페라리 회장은 "지난해 탁월한 드라이버 두 명이 있었지만, 올해는 스타(슈마허를 뜻함)가 있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페라리 드라이버는 엄청난 압박을 견뎌야 하는 자리다. 승리하지 못하면 '멍청이'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는 해야 한다. 엄청난 책임을 맡게 되는 자리라는 소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순 F1 차가 아니라 무엇과도 다른 차를 모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죠.

하지만 불행히도, 차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그의 팀 동료 에디 어바인(1996~1999년까지 페라리 소속)은 "차에 타자마자 다른 차와는 너무 달라서 걱정이 앞섰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걱정은 곧 현실이 됐다. 차는 재앙 자체였다"며 "차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딱히 손 쓸 방도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페라리의 차체는 아예 설계가 잘못됐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1996년 4라운드 바레인 그랑프리 전 퀄리파잉 1(Q1)에서 슈마허의 차가 멈춰섰습니다. 차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속도는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엔진 이상으로 차가 멈춰섰다고 분석했습니다. 당시 견인 트럭에 차와 함께 실린 슈마허의 표정이 무력해 보일 정도로 부진한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슈마허 "차 문제 너무 많다"
"문제가 너무 많아서 몇 달 안에 해결될지 모르겠습니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챔피언십을 위해 경쟁하고는 있지만, 행운이 많이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막연한 꿈일지도 모르겠네요."(슈마허)
평소 말이 없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슈마허가 페라리 이적 후 가진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당시 차 상태가 얼마나 좋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난 몽상가가 아닌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다"며 단순한 감정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페라리 차고의 불이 24시간 켜 있던 것도 이때부터 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슈마허가 있었습니다. 주변인들에 따르면 당시 슈마허는 정비공 세명과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밤 늦게까지 차와 씨름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드라이버들도, 팀 관계자들도 모두 떠난 시간이었습니다. 차의 상태를 그만큼 중시한다는 그의 의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의 아내 코리나 슈마허가 "그가 페라리에서 활동하는 동안 식당에서 제대로 식사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밤 10시까지 미팅을 하기도 했고, 계속 텐트에서 지냈다"고 말할 정도니, 그의 열정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역시는 역시...7라운드서 우승
"너, 페라리 와라"...막연했던 우승, 전설의 선택은 [권마허의 헬멧]
미하엘 슈마허(오른쪽) 및 동료들이 지난 199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랑프리 우승 기뻐하고 있다. F1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런 노력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1996년 6월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그랑프리 7라운드에서 슈마허가 결국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경기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트랙이 좋지 못했지만, 슈마허에게는 핑계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릴적 비가 올 때마다 트랙을 달리며 연습했던 게 적중했던 것일까요. 슈마허는 이를 통해 빗길에서도 차량을 부드럽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슈마허의 차는 혼자 비 속으로 사라졌다. 감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적 후 거둔 첫 우승은 슈마허에게도, 페라리에게도 아주 의미가 컸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슈마허의 건재함과 전통 강자 페라리의 귀환을 알리는 상징적인 경기가 됐죠. 팀 동료 이바인은 "(슈마허가) 어떻게 그 차로 우승했는지 모르겠다"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회상했습니다.

다음화에서는 슈마허가 페라리에서 달성한 업적을 조금 더 다루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팀, 선수가 있으면 메일이나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적극 참고하겠습니다.
물론 피드백도 언제나 환영입니다.혹시 궁금한 팀, 선수가 있으면 메일이나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적극 참고하겠습니다. 물론 피드백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