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정치화했다는 우려가 많다. 재생에너지를 지지하는 진보 측과 원자력을 지지하는 보수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 자기편 언론을 동원하여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국회에서 재생에너지나 원자력을 지원하는 법안들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 지난 9월 있었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공청회에서는 원전 확대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이 단상을 점거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원계획은 소수 관계자만의 관심사였다. 미래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여 장기적인 발전소 건설계획을 세우는 일은 상이한 비용구조와 기술특성을 가진 원자력, 석탄, LNG 발전기들을 잘 조합하여 최소의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한다는 일종의 공학적 최적화의 시각에서 접근하였다.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싸고 편리한 화석연료를 포기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막대한 투자비와 계통보강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재생에너지와 당장의 비용은 싸지만 대형사고 위험과 폐기물 처리라는 사회적 비용이 잠재해 있는 원전 사이에 선택의 문제가 닥친 것이다. 이 문제도 두 전원의 비용과 특성을 정확히 계산하여 과학적으로 최적해를 도출하면 되는데 왜 정치가 끼어드느냐고 물을 수 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나 원전 지지자들은 서로 자기들 주장은 과학이고, 상대방 주장은 정치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과학이 언제나 모든 답을 줄 수는 없다. 당장 높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최우선적으로 보급할 것인지, 아니면 일단은 비용이 낮은 원전을 확대하고 사고나 폐기물 처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비용은 미래로 넘길 것인지의 선택은 개인적 가치판단을 반영한다. 게다가 원전사고의 사회적 비용 자체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중대사고 빈도가 너무 낮아 사고확률을 통계적으로 추정하기 어렵고, 반대로 사고 시 피해가 너무 광범위하여 그 피해액을 객관적으로 산정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원전피해를 전액 보상해 주는 보험도 없다. 결국 사고 위험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성향에 따라 개개인의 태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구성원의 선호가 다른 상황에서 집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전력산업의 정치화는 피할 수 없다.
관건은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정치적 역량이 있느냐이다. 국민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도록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데, 최근 양상을 보면 오히려 정치권이 에너지전환 문제를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서 갈등을 키우고 있다. 그 결과 정권에 따라 전원계획이 재생에너지와 원전 사이에서 널뛰기를 한다. 2021년(탄소중립위안)과 2023년(10차 전기본) 사이에 2030년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발전비중 목표가 8%p 이상 뒤바뀌었다. 백년대계로 접근해야 할 전원계획을 수년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이다. 당연히 비효율과 낭비가 따른다.
정치화한 전력산업이 정쟁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 관료와 외부전문가 중심으로 결정되는 구조는 정치적 압력에 취약하다.
에너지산업 전반에 대한 장기계획 수립과 규제를 전담하는 상시적 정부조직을 만들되 독립성 제고를 위해 합의제 행정기관, 즉 위원회 형태를 취하고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여 자체적인 연구와 정책개발 역량을 갖추게 해야 한다. 전기요금 규제도 이 위원회가 맡아 원칙에 충실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물론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사태를 보면 위원회 형태라고 정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의사결정의 전문성·연속성·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 차선책이 될 수 있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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