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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 통과되면 M&A시 소송 남발 우려"

- 美일부 주주, 사소한 공시누락 빌미로 이사 신인의무(충실의무) 위반 책임 물어
- 매년 1억달러 이상 인수합병 거래의 71%~94%, 주주에게 소송 당해
- 美, 이사의 경영상 책임 면제 폭넓게 인정하나 남소는 막지 못해
- 美, 이사 책임을 면제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으로 이사에게 방어권 보장


"상법 개정안 통과되면 M&A시 소송 남발 우려"
[파이낸셜뉴스] 이사에게 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인수합병(M&A)이나 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주주들이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3일 '미국 M&A 주주대표소송과 이사 충실의무' 보고서를 통해 "미국에서도 인수합병 건당 평균 3~5건의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된다"며 "소송 사유 대부분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 위반"이라고 했다.

신인의무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주의 의무(Duty of Care), 이사가 자신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충실의무(Duty of Loyalty) 등을 의미한다.

한경협에 따르면 미국은 회사가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하면, 해당 거래에 있어 이사가 신인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주대표소송이 거의 자동으로 제기된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미국 상장회사 인수합병 거래(1억 달러 이상, 1928건)를 분석한 결과, 매년 인수합병 거래의 71%∼94%가 주주대표소송을 당했다.

주주들 간 이해득실에 따라 기업들은 인수합병 거래 1건당 평균 3~5건의 주주대표소송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통상 인수합병 계획이 발표되면, 일부 주주가 공시 정보 부족이나 중요 사항 누락 등을 이유로 이사 신인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이후 회사와 원고는 ‘단순 추가 공시’나 ‘합병 대가 상향 조정’ 정도로 화해(Settled)하거나 소를 취하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때 회사는 인수합병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원고 측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일종의 인수합병 거래세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인수합병 관련 주주대표소송이 빈발하기는 하지만, ‘경영 판단 원칙’을 통해 이사의 책임을 제한 또는 면책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송 과정에서 이사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는 게 한경협 측 설명이다.

경영 판단 원칙은 이사가 선관의무를 다하고 권한 내에서 행위를 했다면 비록 회사에 손해가 발생해도 개인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8년 델라웨어주 법원이 판례로 처음 원칙을 수립한 이래 법원에서 이사의 경영책임을 판단하는 일관된 기준이 됐다.

경영 판단 원칙뿐만 아니라 델라웨어주 회사법에는 이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조항도 있다. 이사가 고의로 법령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사익을 취한 것이 아니라면, 회사 정관을 통해 이사의 경영책임을 포괄적으로 면제해 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민법상의 위임계약에 근거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한 우리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체계에 전혀 맞지 않다”면서 “주주에게 별다른 이익도 없고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가치 하락의 우려가 큰 만큼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는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