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디지털 혁명의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 인공지능(AI) 바람이 거세다. 자치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지방행정에 AI를 접목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기대가 크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기술 때문이 아니다. AI의 작동기반인 빅데이터가 자치단체에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우리의 행정정보화 추진 체계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행정정보화는 중앙부처 주도로 이루어졌다. 각 부처별로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산화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생산한 데이터까지 부처 시스템 속으로 쏠려갔다. 이 결과 지방정부는 자기 데이터에 대해서도 주도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게 되었다. 마치 내 쌀을 남의 곳간에 둔 것과 같다. 밥을 지으려면 곳간 주인에게 내 쌀을 꺼내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문지기의 눈치도 보아야 한다. 주인이 출타 중일 때면 더 난감해진다.
이런 상황은 자치분권에 반한다. 아날로그 세계에서는 권한이양 등으로 중앙권한이 지방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디지털 세상에서 데이터는 자치분권에 역류하고 있다. 문제는 이대로 두면 데이터의 중앙 종속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의 자치행정을 제약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행정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데이터 분권'을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지역 데이터를 지방에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지방도 중앙이 관리하는 데이터를 마치 지방 곳간에 있는 것처럼 자유롭게 활용하게 해 주는 것이다. '소유'보다는 '이용' 관점에서 데이터 분권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혹자는 지금도 함께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두 맞는 말도 아니다. 반쪽만 공동활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행정 시스템들은 부처 업무별로 자치단체와 종적(縱的)으로 구축되었다. 이를테면 농정 시스템은 농림축산식품부-시도 농정부서-시군구 농림부서 라인으로 짜여 있다. 다른 업무 시스템들도 같은 방식이다. 이런 체계는 부서 간, 업무 간 높은 장벽(silo)을 만들어 횡적인 공동활용을 어렵게 만든다. 농정부서는 복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동일 부처 소관 데이터라 하더라도 부서가 다르면 상호 접근이 어렵다. 주소와 재정은 모두 행정안전부 소관 데이터이지만, 지방의 재정부서는 주소데이터에 접근하기 어렵다. 이런 틀에서는 좋은 빅데이터를 얻기 힘들다. 우리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양한 영감과 가치를 얻으려면 동종 데이터를 넘어 이종 데이터 간 결합과 융합이 필요하다.
해결책이 있는가? 중앙 데이터든 지방 데이터든 부서와 업무의 벽을 넘어 모두가 함께 이용 가능한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마침 이 작업을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이라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경험칙상 부처 간 공동활용은 관련 부처 합의와 법령의 손질이 선행되어야 하기에 현재 수준 이상 큰 폭으로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행정안전부 소관 시스템들만이라도 서로 연계하여 '지역데이터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떨까.
지금 행정안전부 산하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는 42개 시스템 속에 2300여개 지역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고 한다. 이들 시스템만 상호 연계해도 지방에서는 부서와 관계없이 행정안전부 소관의 대부분 데이터를 공동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다음 동 연계 시스템에 부처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추가 연결한다. 지방이 접근할 수 있는 중앙 데이터의 영역은 크게 확장될 것이다. 이런 작업을 계속하면 자연스럽게 '범정부 차원'의 데이터 분석플랫폼이 만들어질 것이고, 데이터 분권도 크게 촉진될 것이다.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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