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제노바港 빌려
세계 물류시장 쥐락펴락
진정한 'Seatizen' 돼야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세계를 보는 기준은 참으로 다양하다. 바다의 시각에서 보면 바다 있는 국가와 바다 없는 국가로 나누어진다. 195개 유엔 회원국 중에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 45개국이고, 섬나라가 50개국이다. 물론 바다가 있다 해도 중동 요르단의 해안선 26㎞처럼 아주 작은 바다만 있는 등 국가마다 그 여건은 매우 다르다.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중에는 인도네시아가 가장 크고 마다가스카르, 파푸아뉴기니, 일본, 필리핀 순이다. 물론 그린란드는 가장 큰 섬이지만 덴마크의 일부로 해외 영토이기에 별도로 본다. 그런데 이 그린란드가 바로 섬의 기준이기에 그린란드는 지구에서 가장 큰 섬이 되며, 호주는 가장 작은 대륙이다.
그렇다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는 모두 해양 국가인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나 영국은 다 같은 섬나라로, 면적은 오히려 마다가스카르가 영국보다 두 배 이상 크다. 그러나 우리는 영국은 해양대국이라 주저 없이 부르지만 마다가스카르를 해양국가로 부르지는 않는다. 왜일까. 바다가 있다는 것은 해양국가로 발전하기에 좋은 충분한 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닌 것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면서도 바다로 진출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생각이 육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면, 그저 바다가 있는 '무늬만 해양국가'라 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바다 없는 내륙국가이지만 해양국가라 불러야 할 나라들이 있다.
스위스는 알프스의 작은 산악국가이다. 스위스는 근대까지 면적은 작고 농토도 시원찮은 가난한 약소국이었다. 그러기에 로마 교황청 근위병들은 일자리를 찾아 알프스 몽블랑 산을 넘은 스위스 청년들이 도맡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스위스는 전혀 다르다, 불어권의 국제도시이자 레만호수의 도시 제네바에는 깜짝 놀랍게도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이자 크루즈 운영선사 MSC의 본사가 있다. 이 MSC는 우리나라 최대 선사인 HMM보다 5배 정도 더 큰 글로벌 선사로 세계 물류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10만여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물류검증회사 SGS의 본사도 제네바에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다 한 뼘 없는 스위스가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의 하나인 아메리카스(Americas)컵 요트대회에서 2003년, 2007년 연속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이 대회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에 맞먹는 10조원 정도의 경제적 유발 효과를 지닌 스포츠 행사로 4년마다 열린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자 당시 스위스 대통령은 "스위스가 산악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활로를 찾았다"고 했는데 스위스가 해양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바다라고는 한 뼘 없는 스위스는 어떻게 해운국가가 되었을까. 스위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탈리아 제노바 항구를 빌리는 지혜와 바다를 향한 열정으로 바다 없어도 해양강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다 없는 내륙국가임에도 바다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고 바다로 진출하고자 하는 스위스 국민들의 인식과 의지야말로 참된 해양강국의 모습이자 그 힘의 원천이다.
우리는 삼면이 바다이다. 우리 해안선은 1만5000㎞이며 섬은 3500개가 넘는다. 또한 동·서·남해는 바다가 보여줄 수 있는 각각의 특성을 모두 보여주는 참으로 복 받은 나라이다. 바다로 진출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바다를 통한 국가발전을 도모해 한반도 역사상 중국을 추월해 보는 기쁨을 맛보는 첫 세대가 되었다.
이렇듯 바다는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에게 무역을 통해 국부창출과 경제성장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런 바다를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어 우리가 바다의 혜택을 누린 만큼 다음 세대도 이를 누릴 수 있도록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 세대의 최소한의 시대적 책무일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진정한 해양국가인가 아니면 '무늬만 해양국가'인가? 우리 모두 'Citizen'이 아닌 진정한 해양시민 'Seatizen'이 되자.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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