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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브뤼셀 효과와 우리의 대응

[fn광장] 브뤼셀 효과와 우리의 대응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브뤼셀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도시이다. 파리나 로마와는 다른 느낌의 아기자기한 관광지가 가득한 곳이고 와플, 초콜릿 그리고 벨기에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감자튀김 등 먹을거리도 많은 도시다. 오줌싸개 동상이 작다는 것에 실망하다가도 브뤼셀 시청사와 그랑 플라스의 화려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5000만 인구가 같은 말을 쓰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인구 100만명 정도의 도시에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같이 쓰는 것도 신기하다.

그런데 브뤼셀은 관광지를 넘어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브뤼셀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이사회, 유럽의회, 사법재판소, 회계감사원 등 EU의 대부분 기관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은 집행위원회다. 집행위원회는 EU의 행정부로, 법을 집행하고 예산안을 마련함은 물론 법안을 발의하기도 한다. 워싱턴이라고 하면 백악관이나 미국 정부를, 베이징이라고 하면 중국 공산당을 떠올리는 것처럼 브뤼셀은 EU 정부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유럽 지역 밖으로까지 행정력을 행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본래 EU는 회원국 간에 사람, 상품,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유럽 내 단일시장을 만드는 것에 주력해 왔다. 그러다 이제는 EU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나 소비자 보호를 위해 유럽 밖의 일에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경쟁법을 위반하면 EU 집행위원회가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하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같은 우리나라 기업 간 M&A에 대해서도 집행위원회가 승인 권한을 갖는다.

EU가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자국 법령을 적용함에 따라 기업들로서는 좋든 싫든 EU 집행위원회의 정책과 법령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EU 기업의 경쟁력은 예전만 못할지 모르지만,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6만달러에 인구 4억5000만명 시장의 위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EU 규제의 수준이 일반적으로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엄격하다 보니 다국적 기업으로서는 각국의 다소 완화된 다양한 기준을 따르는 대신 가장 높은 EU의 기준을 시장을 불문하고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간편하다고 보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개인정보 분야인데, EU의 개인정보 보호법인 GDPR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개인정보 보호법의 일종의 표준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경쟁법이나 개인정보 분야의 성공에 힘입어 EU 집행위원회는 화학, 환경, 인공지능, 빅테크, ESG 등 다양한 분야로 규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EU의 규제는 유럽의 새로운 수출품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뤼셀에서 여러 로비단체나 로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은 물론 EU 규제 서비스 산업도 활력을 얻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브래드포드 교수는 10여년 전 이러한 현상을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라 지칭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EU가 엄격한 규제와 역외 적용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좋든 싫든 브뤼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 우리나라 법을 집행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는 우리로서는 EU의 영향력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EU의 규제환경을 제대로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EU가 지역 내 환경규제를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태양광 패널이나 이차전지, 전기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중국의 관련 기업들이라는 보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친환경 저탄소 산업 육성, 기후금융을 통한 지원과 같이 브뤼셀 효과를 기회로 살릴 수 있는 정책들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길 바란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