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15세기 들어 유럽은 대항해를 시작했다. 세계 곳곳의 상품이 유럽으로 흘러들었다. 대표적인 상품이 향신료였다. 당시 유럽의 귀족에게 향신료는 일종의 사치품이었다. 향신료 거래로 막대한 이득도 취했다.
단연 으뜸인 향신료는 육두구였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말루쿠에서만 나는 열매다. 누린내와 비린내를 잡는 데 그만이었다. 육두구를 얻고자 유럽은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작 원주민들은 육두구 거래에 관심이 없었다. 원시 수준의 생활 탓에 거래로 얻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화폐를 받아도 쓸데가 없었다. 급기야 1621년 네덜란드는 원주민 5천여명을 학살했다. 원주민이 자유무역을 거절한 대가는 참혹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청나라에서 엄청난 양의 홍차를 수입했고, 직물을 수출했다. 그러나 실크로 유명한 청나라는 영국의 직물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영국은 개방 확대를 요구했지만, 청나라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영국은 무역적자가 쌓였고, 급기야 아편을 팔아 그걸 메꾸려 했다. 결국 두 나라는 전쟁을 치렀고, 이를 아편전쟁이라 불렀다. 그 결과 청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청나라가 자유무역에 적극적이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자유무역을 향한 세계의 욕심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면서 각국은 자국 시장을 지키려 했다. 많은 국가가 일제히 관세를 부과했다. 대공황의 그림자가 걷힐 무렵 각국은 상품 생산이 증가했다. 그러나 보호무역 탓에 팔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식민지 건설에 나섰고,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만약에 관세를 높이지 않았다면, 역사가 어디로 흘러갔을지 궁금하다.
결국 세계는 자유무역을 선택했다. 자유무역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각국은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만 생산하고 그걸 서로 거래(무역)하는 것이다. 여기에 거래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으면 안된다. 이게 바로 자유무역의 핵심이다. 그래도 일정한 질서가 필요했기에 관세 무역 일반협정(GATT), 우루과이라운드,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생겨났다. 이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다. 아예 관세를 없애고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이를 확대해 경제블록을 만들었다. 바야흐로 자유무역 전성시대였다.
한국은 자유무역으로 성장한 나라다. 외국의 기술을 들여오고 자본을 유치해 공장을 지었다. 여기서 만든 제품을 세계시장으로 수출했다. 덕분에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이 있었기에 중국은 미국에 맞서는 유일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자유무역이 흔들리고 있다. 2017년 트럼프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그가 다시 미국경제를 이끈다. 트럼프는 중국산 제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할 거라고 했다. 취임 첫날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불법이민과 마약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해서란다. 이건 포장에 불과하다. 속내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유리하게 개정하려는 것이다. 멕시코에 있는 중국기업을 압박하려는 속셈도 있다.
한국에서도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보호무역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국책연구기관들은 미국이 관세를 높이면 한국경제에 플러스 효과가 있다고 전망했다. 다행이다. 그러나 관세는 수단일 뿐 목적은 따로 있을 게다. 예를 들어 관세를 압박해, 정확히 말하면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개정을 유도하고, 한국의 방위비 분담을 높이려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대기업이 중국 대신 미국에 투자하도록 유인할 것이다.
한국경제에 수출은 대단히 중요하다. 수출에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니다.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통상, 산업, 외교, 안보 담당자가 머리를 맞대고 차분히 트럼프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게 먼저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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