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

'끝'을 지나 다시 '시작'… 어지러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꿈꾼다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
■ 잘가라, 2024년이여! ■
'현재'를 귀중하게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다. 새해를 바로 앞에 둔 우리는 조율이 필요하다. 각자 다른 의미겠지만 자신들의 목표를 향한 조율이 절실한 때다.

'끝'을 지나 다시 '시작'… 어지러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꿈꾼다 [작가와의 대화]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마지막'이란 말은 긴장감이 돈다. 그러나 나는 심드렁한 척한다. 아니다, 조금은 슬프다.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는 나이 든 사람이다. 가고 또 가는 것이 시간이다. 이 세상 큰 권력도 잡을 수 없는 것 딱 하나가 시간이다. 그러니 '현재'를 귀중하게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뉘우치고 반성하는 시간도 아까워해야 하는 마음이 '지금'을 잘 살릴 수 있다. 반성에서 반성으로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은 너무 헛된 시간이 아니겠는가.

그리스 사람들은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하고, 특별히 의미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깨어 있으므로 현재 충실한 삶을 카이로스라고 하는 것이다. 이 카이로스는 창조적 삶을 진행하는 데 가장 필요한 의지이다.

음악에서는 '조율'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생각해 보면 조율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조율이 없으면 우리들의 목소리는 탁해진다. 조율은 감정을 더 살펴야 현존의 내면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를 바로 앞에 둔 우리들은 이 조율이 필요하다. 각자 다른 의미의 조율이겠지만 각자 자신들의 목표를 향한 조율이 절실하지 않겠는가.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여성 다섯 명이 한 회사 직원 100명씩을 두고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고 회사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화가 김점선 선생이 있었다. 우리 강사 다섯 명은 마음이 통했는지 그룹으로 발전했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졌다. 첫 모임이 12월이었다. 김점선 화가가 말했다. "새해를 위해 우리 모임의 이름을 만듭시다."

본인이 발의하고 본인이 이름 하나를 우겼다. 모임의 이름은 바로 '가위'였다. 우리 다섯 명이 이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가위로 싹둑싹둑 자릅시다. 우리는 모두 웃었고 그럴듯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임은 두 번을 끝으로 사라졌다. 바로 그 화가가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12월이면 생각나는 사람이다. 가위를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는 떠나버렸다. 그 다섯 명의 여성적 깃발이 사라진 것은 한국적 손실이다. 가위가 짝짝 소리 한번 내지 못한 것도 한국적 손실이다. 여성의 힘은 바람 불지 않아도 폭풍이 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은 중요하다. 김점선의 그림은 밝고 다정하지만 그의 내면은 축축한 우울과 저항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우울과 저항을 합해 일어섰다면 대한민국의 소나무 열 그루 값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한다. 여성의 힘은 강력하므로…. 우리는 '가위'의 힘을 믿었고, 가위의 숨은 힘으로 이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아직도 있다. 여성은 가장 부러지지 않는 힘이므로….

고대소설의 주인공들을 보면 여성의 강인한 힘을 엿볼 수 있다. 고대소설을 보면 지금 현재 여성의 힘을 주시하지만 사실 점점 여성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향전'은 연애소설이 아니다. 여성이 얼마나 실존에 강하며, 인간적 약속을 생명보다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도령과 사랑의 약속을 했다. 변사또의 사형선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나는 약속한 사람이 있다"며 목숨을 내놓았다. 이야기는 발전하여 이도령이 변사또를 처단한다. 사또를 처단하고 이도령은 바로 감옥으로 가 춘향을 만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도령은 춘향의 마음을 다시 떠본다.

"나는 새로 부임한 사또다. 변사또의 수청은 거절했다는데 내 수청은 받아들이겠느냐."

"오는 이마다 장관이로세. 빨리 날 죽여주소."

춘향의 이 말에 "오! 내 사랑" 하는 것이 춘향전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때부터 여자를 의심하는 의처증이 남자들에겐 존재했던 모양이다. 목숨을 내놓은 여자에게 의심이라니. 목숨으로 약속을 지키는 여자로 심청이가 또 있다. 덜컥 약속을 해놓은 아버지의 공양미 삼백석이 누구 애 이름인가. 그 부질없는 약속을 딸 심청이가 목숨을 던지며 지킨 것이다. '장화홍련전' '박씨전' 모두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똘똘 뭉쳐 있는 여성 주인공들이다.

여성의 힘을 세상에 알린 것 중에 국극단이 있다. 요즘 '정년이'로 화제가 된 여성 국극단은 내게도 인연이 있다. 국극단은 판소리를 근간으로 하는 무대예술이다. 그 시절엔 그것이 유일하게 여성만이 하는 무대였다. 1948년 명창 박록주(1905~1979)가 만든 여성 국극단이다.

거창극장은 장터 바로 앞에 있었다. 임춘앵과 김진진이 주인공인 국극단이 오면 극장 앞에서 종일 징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 극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집까지 그 소리는 내 심장을 울렸던 것이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다만 그 소리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열세 살이었다. 중학교 1학년 가을 나는 언니 옷을 훔쳐 입고 사각보자기에 몇 가지 옷을 싸서 가출을 단행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들의 무대만이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보자기로 머리를 싸고 딱 한번 본 그 연극이 나를 이탈시킨 것이다. 미쳤다 해야 맞다. 언니가 달자가 이상하다고 엄마에게 말했고, 배우들이 묵는 여관으로 한걸음에 달려왔고, 밤 10시 나는 엄마에게 잡혔다. 그날 밤 안 죽을 만큼 맞았다.

맞아서 며칠 앓고 무대는 끝이 났다. 그러나 집에 사람이 없는 날은 장독대가 무대였다. 이 항아리 저 항아리를 툭툭 치며 혼자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끝이었지만 이번 '정년이'를 보고 또 하나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그냥 웃었다. 평생 강의를 하며 살았는데 연극인 손숙씨는 내 강의를 공연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말로 가슴을 치며 노래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잘가라! 2024년이여! 무척 어지러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꿈꾼다. 다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내 인생은 다시 담담히 흘러갈 것이다.

'끝'을 지나 다시 '시작'… 어지러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꿈꾼다 [작가와의 대화]

신달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