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동하는 공직자를
일본선 넙치관료라 불러
방방곡곡은 津津浦浦로
윤학배 前 해양수산부 차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면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서 말기에는 상당히 낮아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런데 가끔 지지도가 너무 떨어지게 되면 국정 운영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여러 분야에서 좋지 않은 징후인 일종의 권력 누수현상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공직사회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가장 대표적이며 상징적이다. 이를 '공직사회가 복지부동하고 있어'라고 비판하고 공무원들을 향해 '복지부동 관료가 문제야'라고 힐난한다.
현재 재직 중인 공직자이든 퇴직자이든 가장 듣기 싫고 또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꼽으라면 아마도 '복지부동'이 부동의 1위일 것이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하에서 여당과 야당이 바뀌는 정권 교체기나 또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직자들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정치권이나 외부 눈치만 보는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모습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이고 손실이다.
다행히(?)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우리와 문화적 공통분모가 많은 일본 역시 비슷한 의미의 표현이 있다. 바로 '넙치관료'이다. 육지 지향적인 우리와 달리 바다의 나라인 일본은 이렇듯 정치권이나 위의 눈치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 공직자들을 넙치관료라고 일컫는다. 넙치관료라니! 설마 일본 관료들이 광어회를 너무 좋아해서 그리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생선회로 좋아하는 생선인 광어, 즉 넙치는 바다 바닥에 붙어 있는데 두 눈이 왼쪽에만 있어 한 방향만 볼 수 있다. 원래 넙치가 어릴 때는 다른 물고기처럼 양쪽에 눈이 있지만 커가면서 눈이 왼쪽으로 점점 움직여 붙게 된다. 넙치관료란 바다 바닥에 바싹 엎드려 한쪽 눈만 뜬 채 멀뚱거리는 모습을 빗댄 것으로, 우리의 복지부동 관료와 같은 표현인 것이다.
과거 우리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해외에서 열리는 국가대표 간의 경기 중 위성중계를 하는 대표적인 스포츠가 축구였는데, 중계를 들으면 약간은 흥분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안녕하십니까? 전국 방방곡곡에서 밤늦게까지 이 경기를 시청하고 계신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하던 고전적 표현이 기억난다. 그런데 만약 일본 경기를 일본 아나운서가 일본에 중계한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다 동일하겠지만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 대신 '전국 진진포포(津津浦浦)'로 바뀔 것이다. 방방곡곡이란 말 그대로 산골 구석구석, 골짜기 골짜기를 말한다. 진진포포는 반대로 나루터 나루터와 바닷가를 의미한다.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다. 같은 항구이지만 진(津)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에, 포(浦)는 상업적인 기능을 하는 해안가나 강가에 있는 항구에 붙여진 지명이다.
복지부동과 넙치, 방방곡곡과 진진포포의 차이는 바다에 대한 우리와 일본의 인식이 크게 다름을 보여준다. 바로 우리는 육지 지향형 국가요 민족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반대로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에 바다가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바다의 시각에서는 부럽기까지 하다.
우리가 대륙 지향형으로 살아왔던 역사의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는 중국의 영향권 내에 있어 왔다. 그랬기에 우리 한반도가 군사적·경제적·문화적으로 중국 대륙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섰던 기간은 눈을 씻고 보아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광복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래도 해양과 해외로 눈을 돌렸던 최근 30~40년간이 아마도 역사상 우리가 중국을 능가한 최초의 시기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이 기간을 50년이나 100년으로 늘리기 위해서, 아니 최소한 거꾸로 다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지구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기회와 미래인 바다로 가자. 주저하거나 꾸물대지 않아야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 계시는 국민 여러분, 이제 골짜기를 나와 저 넓은 바다로 가야 할 때입니다.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
윤학배 前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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