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경제 집어삼켜
대선 올인… 정책은 뒷전
얼마나 나라 망칠지 불안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비상계엄 사태로 발발한 탄핵정국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경제도 집어삼켰다.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내수경기는 멈춰 섰다.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은 영업부진이 심화되어 벼랑 끝에 몰렸다. 자영업자의 폐업률과 대출 연체율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최초로 1450원을 돌파했고, 더 오를 전망이다. 그나마 호조를 보이며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정치적 혼란이 거세질 내년도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행은 거시경제의 충격을 가정해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1.1%로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몇 달 전만 해도 2%대로 예측된 성장률이 반 토막 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 정부는 추경을 집행해 돈을 풀고 소비에서 수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경기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탄핵당하며 대행체제로 넘어간 정부는 무기력하다. 거대 야당이 권한대행 탄핵까지 압박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할 일은 별로 없다. 선장 잃은 난파선 꼴이 된 정부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통상압력이 가중되고 국제경제가 요동쳐도 대응할 능력이 없다.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건 기각되건 현 정부는 식물정부로 남을 것이다. 정치권은 비상계엄과 내란죄로 난무하는 고소, 고발, 탄핵소추에 휩쓸려 민생과 경제를 돌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빨리 끝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차기 정부가 방향타를 잡고 난국을 헤쳐나가야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언제 차기 정부가 세워질지는 불투명하다. 탄핵이 인용되면 내년 후반이고, 기각되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의 혼란이 문제이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큰 지진 후에 여진이 오듯 혼란의 여파는 심각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지만 차기 정부의 정책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실험이 될 것이 우려된다. 진보건 보수건 중도건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대통령 탄핵과 극렬대립을 거쳐 세워진 정부의 정책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각 정당과 대선 후보는 투쟁과 대선에 올인하느라 정책구상은 뒷전으로 미뤄둘 것이다. 차기 정부는 인수위 구성 이전에 경제정책을 계획하고 입안할 여유가 거의 없을 것이다.
대선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경우 각 당의 후보들은 1~2년 전부터 캠프를 꾸리며 정책팀을 운영한다. 분야별로 과거 정부의 정책을 검토하고 공약으로 내세울 새로운 정책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하지만 탄핵으로 인해 조기대선이 실시되면 정책을 논의하고 모색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 차기 정부에서는 급조된 정책이 실시되어 시행착오가 발생한다. 부실한 설계도에 날림공사로 지어진 건물에 하자가 많은 것과 같다.
게다가 차기 정부는 전 정부와 단절을 원할 것이다. 탄핵당한 정부의 정책을 누가 계승하려 하겠는가. 원래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추구해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장기 성과가 안 나온다. 이런 병폐가 차기 정부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날 것이 걱정된다.
차기 정부는 정권 획득에 기여한 강경세력의 눈치도 봐야 할 것이다. 탄핵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새 정부가 들어서는 데 힘을 보탠 우호적 세력이 자기 몫을 주장하며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이에 휘둘려 차기 정부의 정책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대통령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동산, 에너지, 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등의 급진적 정책이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켰고 그 탓에 정권을 잃게 되었다.
역사는 반복한다는데 대통령 탄핵에 의한 정부 교체가 다시 벌어지니 답답하고 안타깝다. 무엇보다 차기 정부의 단절적이며 급진적 정책이 또 어떤 오류와 부작용을 가져와 얼마나 경제를 망칠지 겁나게 불안하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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