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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의 외교포커스] 한미동맹의 존재조건

트럼프, 중국견제에 초점
미국 우선주의 외교 천명
더 큰 비용분담·역할 요구

[최원기의 외교포커스] 한미동맹의 존재조건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곧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외정책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초강대국 미국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 확실하다. 트럼프는 더 이상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세계경찰' 역할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국익만 중시하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America First Foreign Policy)'을 천명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정책 조언을 제공해 온 미국 우선주의 정책연구소가 권고한 내용들을 보자. 다자주의 국제질서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며, 어떤 국제기구든 국익에 배치되면 탈퇴 또는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가치 때문에 국익과 직접 상관없는 관여는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다자주의 국제협력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과감하게 거부한다. 국력에 걸맞은 안보비용을 분담할 용의가 있는 동맹국과만 협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협력관계를 축소한다.

물론 이런 권고들이 실제 정책으로 이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등 외교안보 요직을 대부분 행정부 경험이 없고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인사들로 채우고 있다. 전문 관료들의 벽에 막혀 '소신'을 펼칠 수 없었던 1기 행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은 미국 국익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다자주의적·국제주의적 관여는 대폭 축소하고 가장 큰 위협인 중국에 대한 안보, 경제 및 기술 분야 견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외정책 기조가 반드시 고립주의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와 같은 보편적 국제주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아예 철수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중국에 초점을 맞춘 '선택적 관여'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은 최근 핵심 요직인 국방부 정책차관으로 지명된 엘브리지 콜비의 주장을 보면 잘 드러난다.

콜비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차관보를 지내면서 트럼프의 대중국 안보전략 수립에 주요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상황에서 제한된 자원과 군사력으로 과거와 같이 유럽·중동·아시아 3개 지역에 동시적으로 관여하기 어려우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국의 국익에 사활적 지역인 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구축해 미국을 밀어내고 배타적 세력권을 형성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저서 '거부전략'의 핵심 논지이다. 특히 그는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에 너무 과도한 자원과 정책적 관심을 쏟아부은 나머지 미국의 주의가 분산됐고, 결과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최대 안보위협인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했다고 비판해 왔다.

콜비는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견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트럼프의 견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실 그의 논지는 미국의 오래된 전략적 사고의 흐름에서 보면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에 도전하는 어떠한 지역패권(regional hegemon)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에 더 큰 비용 분담과 역할을 요구하고 이에 호응하면 계속 협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협력을 파기하겠다는 태도다. 이는 향후 동맹국들의 호응 여부, 즉 '거래'의 결과에 따라 계속해서 주요 우방들과 협력할 여지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과거와 같이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자비로운' 패권이 더 이상 아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국력이 저하된 미국이 자기중심적이고 보다 근시안적 패권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에서 한미동맹의 존재 조건과 작동방식도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더 큰 비용 분담, 역할 확대가 한미동맹의 새로운 존재 조건이 될 것이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