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단순한 희극 오페라가 아니다.
이 작품은 18세기 계급 사회의 몰락과 새로운 경제 질서를 예고한 작품이다. 사랑과 질투를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경제적 변화와 계급의 균열을 드러내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피가로의 결혼' 초연 이후 3년이 지난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폴레옹이 이 작품을 두고 "(프랑스) 혁명 이전의 혁명"이라고 평한 것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알 수 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알마비바 백작은 자신의 하인인 피가로와 수잔나가 결혼하려고 하자 신부와 먼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봉건적 권리인 초야권을 행사하려고 한다. 구시대 인물 백작과 그를 막기 위한 피가로 사이 갈등은 그 당시 전통적 권력 구조에 대한 신흥 중산층 및 노동 계급의 도전을 은유한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경제구조가 변하고 있었다. 자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증산층이 부상한 반면, 귀족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피가로는 이 변화의 상징적 존재로, 기득권에 도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는 현대의 경제 관련 사건들과도 맞닿아있다.
2021년 1월, 개인 투자자들이 대형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대항해 게임스탑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주가를 폭등시킨 일명 '게임스톱 사건'이 있었다. 가격을 올리려는 개미 세력과 내리려는 기관 세력이 붙으면서 가격이 초 단위로 등락을 거듭했다.
사실 개인 투자자들의 경우 단합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게임스톱 사건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단합한 개인 투자자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기존 금융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협력과 재빠른 정보 공유를 통해 헤지펀드의 공매도 전략에 맞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액 투자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 거대 권력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피가로와 수잔나가 힘을 합쳐 백작을 굴복시킨 것처럼 다시 한번 협력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소액 투자자들이 협력해 전통적인 시장 질서가 무소불위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시대의 변화를 담은 예술적 선언이다. 오늘날에도 피가로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며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만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라는 것을!
최상호 국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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