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

"韓, 노동생산성 높이려면 우수 이민자 적극 받아들여야"[2025 코리아 밸류업]

세계 경제 석학에 묻다 비노드 토마스 前 세계은행 수석부총재
고령층 노동시장 재투입·성평등 높이면
한국도 저출산·고령화 위기 극복 가능
트럼프, 취임 후 관세인상 사실상 확정
한국도 20% 보복관세 피하기 힘들어
세계경제 최대 변수는 지정학적 리스크
2026년부터 5년간 세계경제 연 2% 성장
화석연료 의존 낮추고 친환경 대체 필요
韓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 늘려야

"韓, 노동생산성 높이려면 우수 이민자 적극 받아들여야"[2025 코리아 밸류업]
비노드 토마스 전 세계은행 수석부총재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한국의 노동생산성을 높일 해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은퇴 고령층을 노동 시장에 재투입하고 직장, 가정 등 여러 곳에서 성평등 수준을 더 높이면 저출산·고령화 시대 한국의 노동생산성 하락 문제를 극복할 해법이 될 수 있다." 비노드 토마스 전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는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진행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노동생산성 방어를 위한 3가지 키워드로 △은퇴 고령층 △여성 △이민을 제시했다. 특히 토마스 전 수석부총재는 우수인력 중심으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정서상 사회·문화적 갈등이 생길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물론 그렇지만, 인구가 나라의 생활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이민자 수용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먼저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해 이민정책을 추진했던 싱가포르의 사례를 참조할 것을 조언했다. 또 "교육·보건 등 사회적 비용을 더 투자하는 것도 노동생산성 하락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부연했다.

토마스 전 수석부총재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체제에서 한국이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점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관세 인상은 사실상 확정된 정책"이라며 한국도 20%의 보편관세 부과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집권 1기 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했던 트럼프 당선인이 김 위원장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며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미중 관계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양국 모두 파행 수준의 갈등은 피할 것으로 점쳤다. 토마스 전 수석부총재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내수경제와도 연관되는 만큼 중국은 어찌 됐든 안고 가야 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세계 경제 최대 변수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꼽았다. 세계은행 재직 시절 한국개발연구원(KDI) 강연, 녹색기후기금(GCF) 합류 검토 등을 위해 한국을 종종 찾았다고 밝힌 그는 이번이 6번째 방한이라고 했다. 다음은 토마스 전 수석부총재와의 일문일답.

교육·보건 등 사회적 비용 더 투자해야

―한국을 다시 방문한 소감은.

▲한국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할 때 완전히 다른 레벨이다. 싱가포르가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높긴 하지만, 한국이 경제 규모가 훨씬 더 크다. 한국이 현재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며, 얼마나 현명하게 이에 대처하는지 그리고 경제체제가 고령층의 소비활동을 어떻게 지원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컸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고령화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3가지 키워드가 있다. 고령층, 여성, 이민이다. 여전히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은퇴 고령층을 노동 시장에 다시 투입하면 생산성이 개선될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미 유럽은 이런 실험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다음은 여성이다. 한국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남녀가 평등하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남성도 육아에 여성과 동일한 수준으로 참여하는지, 출산 후 직장에 복귀했을 때 이전과 동일하게 업무를 할 수 있는지 등 미묘한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은 문화적 측면에서 성평등을 더 강화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한국 내 이민 확대 시 갈등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민은 분명 어려운 문제다. 문화적·도덕적·인종적·경제적 분야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가능인구가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기여도를 고려할 때 고급인력을 받아들여 (이민자 반감과의) 갭을 메우는 게 정답일 수 있다. 또 교육·보건 등 사회적 비용을 더 투자함으로써 노동생산성 하락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한국산 반도체나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깎거나 아예 없앨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대내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에 60%, 한국을 포함한 그 외 다른 나라는 20% 정도 관세를 부과하려 할 거다. 관세 인상은 사실상 확정된 정책이나 다름없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조 바이든 정권 때보다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중' 노선을 앞세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적어도 중국에 대한 관세정책은 바꾸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에 미칠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산 중간재 관세 부과 여부는 대중국 관세만큼 명쾌하게 나온 건 아니다.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한국에 큰 타격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단 지정학적 관계는 꽤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그동안 한몸과 같은 동맹 관계였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인은 김정은과 친한 사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과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면 지금과 같이 한미 연합훈련을 계속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트럼프 2기 체제선 달러 약세 보일 것

―달러 강세가 올해에도 이어질까.

▲트럼프 2기 행정부 체제에선 오히려 달러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믿지 않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돈을 찍어내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일할 사람을 정부 요직에 앉히면 그 어느 때보다도 물가가 올라 달러 가치도 떨어지게 만들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자본흐름에 규제를 둬 일시적으로 달러 강세를 조성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약해질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내수경제와도 연관되는 만큼 중국은 어찌 됐든 안고 가야 하는 나라다. 프랑스나 독일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다만 미국 정치인들은 대중 관계에 있어서 항상 현실 여건과 대립하는 정치적 수사를 남겨왔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의 정치인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우리 미국도 유리하다'고 말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쉽지 않을 거다. 중국은 경제적·지정학적으로 큰 문제로 남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마지막 임기이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 가령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전기차를 이유로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피력한다면 미국이 중국을 안고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직후 파리협정(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을 탈퇴할 것이 유력하다. 글로벌 기후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까.

▲트럼프는 자신의 공약은 꼭 지키려고 할 거다. 즉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순간 파리 협정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에 미친듯이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대폭 깎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기차 지지자인 머스크 CEO가 트럼프 신행정부의 가장 큰 어드바이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깎는 것보다 화석연료 사용 확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미국이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면 인도,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도 따라갈 거라는 게 가장 우려된다. 미국이 화석연료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이 재생에너지 부분을 일정 부분 벌충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美, 北과 직접 대화 시도로 韓 소외 우려

―한국의 재생에너지 시장 전망은.

▲한국은 원전 의존도를 더 높이려 하고 있다. 풍력·태양광 비중은 한자릿수고, 수소는 아예 명함도 못 내민다. 만약 내가 다른 별에서 와서 한국을 보면 '해상풍력 돌리기 딱 좋은 플랫폼이네'이라고 할 거다. 한국은 해가 쨍쨍한 날이 많고, 토지 면적도 넓어서 태양광에너지를 발전시키기 좋은 나라다.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에너지원의 20%는 차지해야 하고, 2035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늘리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올해 세계 경제전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지정학적 요소가 지배적으로 영향을 줄 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올해 세계 경제전망치를 낮췄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낳을 수 있는 폭발력이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을 파괴시키는 등의 요인은 전망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요소까지 다 반영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 가능성을 본다면 '0'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후 문제도 세계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변수다. 5년을 전후해 세계 GDP에 약 1%p를 좌우할 영향을 주게 될 거다. 2026년부터 5년간 세계 경제는 연평균 2% 정도 성장할 것으로 본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2%라는 숫자는 대단한 거다.

―올해 세계 경제의 3가지 변수를 꼽는다면.

▲먼저 지정학적 공존이다. 서로 친구가 될 필요도 없고, 서로 좋아할 필요도 없지만 어찌 됐든 서로 공존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게 없이 그 어떤 다른 요소는 무의미하다. 다음은 노동생산성 향상이다.
한국이 과거에 잘한 것처럼 단순히 자본을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육, 보건, 사회적 지원망, 고령층에 대한 관심 등 근본적인 것에 집중해 인구에 변화가 생겨도 어느 정도의 노동 생산성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거다. 친환경 연료로 에너지원을 대체해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정리= mkchang@fnnews.com 장민권 송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