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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좁은데 규제는 많아... 한국은 창업하기 어려운 나라[2025 코리아 밸류업]

떠나는 부와 인재를 잡아라 ‘탈한국’ 젊은 창업가의 생각
비대면 진료 ‘닥터히어’ 김기환 대표
2019년 美에서 본격 사업 시작
현지 대면진료까지 서비스 확대
맨해튼 한 곳이 韓시장보다 커
‘우선 하지마’ 규제에 지쳐 떠나
해외 본사 둔 韓스타트업 148개
4년만에 41% 급증 이탈 빨라져

시장은 좁은데 규제는 많아... 한국은 창업하기 어려운 나라[2025 코리아 밸류업]
게티이미지뱅크
시장은 좁은데 규제는 많아... 한국은 창업하기 어려운 나라[2025 코리아 밸류업]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규제와 작은 시장 규모로 벽에 부딪혔다. 미국으로 나가게 된 이유다."

김기환 닥터히어 대표(사진)는 최근 파이낸셜뉴스와 화상 인터뷰에서 "글로벌 회사가 많이 나오는 곳이 미국이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미국에서 창업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정부 규제를 기다리다가는 한세월 다 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8년 韓서 2019년 美로 간 이유는

닥터히어는 2018년 한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한국 법인명은 '메디히어'로 자체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 진료와 처방전 발급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2018년 국내에서 사업 테스트를 하다가 2019년 10월 미국으로 건너갔고, 2020년부터는 범위를 대면 진료까지 확대했다. 현재 미국에서 병원 5곳을 개소해 운영하고 있고 5곳도 추가로 계약을 마쳤다.

그는 청년 사업가들이 해외에 나가는 이유로 '규제'와 '시장 규모'를 꼽았다. 김 대표는 "예를 들면 정부의 모태펀드의 경우 해외 투자를 못하게 막아 놓아서 투자를 못한다"며 "미국의 경우 '우선 해봐, 그 대신 잘못되면 끝장 나는 거야' 식이라면 한국은 '우선 하지 마' 식"이라며 "아무리 패스트트랙으로 대책 마련을 해도 (바꾸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시장 규모가 작은 것도 이탈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김 대표는 "현재 미국 내과 병원 시장에 들어가는 등 병원을 만들고 있는데, 규모가 한국의 20배"라면서 "뉴욕에 있는 맨해튼 하나의 시장 규모가 한국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료비만 보면 우리 병원 진료비가 15분에 20만원 정도인데, 한국은 2만원"이라며 "벌써 10배가 차이난다"고 덧붙였다.

동남아시아에서 한식업을 하고 있는 조미나씨도 비슷하다. 그는 부모님과 한국에서 2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다가 8년 전부터 동남아에 진출, 김치를 현지 브랜드화해서 유통·판매하고 있다. 그는 네트워크 부족, 남들의 인정과 시선을 중요시하는 사회풍조, 주입식 교육 등 복합적인 이유로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는 "한국은 작은 자본으로 무엇을 시작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구조"라며 "남들의 인정을 중요시해서 도전하기를 꺼리고 더 크고 알려진 조직에 속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다"고 덧붙였다.

■해외 본사 둔 韓스타트업, 4년새 41%↑

한국 이탈을 한 사람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벤처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타트업은 148개로, 불과 4년 사이 41% 급증했다.

이들은 한국 이탈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대표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가 미국에서의 글로벌 창업을 부추기고 있다"며 "(창업자들을)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만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 모태펀드의 해외 투자 가능 등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조 씨도 "창업가들을 한국으로 들어오게 하기보다는 정부나 대기업 차원에서 이들을 해외에 내보내도록 지원하고 연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한국은 시장이 작고 경쟁이 치열해 포화된 부분이 많지만, 아시아 지역은 인구도 많고 인건비도 낮다"고 했다.


무작정 한국 이탈을 막지 말고 이들을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결국에는 창업가들이 외화를 벌어서 한국에 가지고 오게끔 해야 한다"며 "과거 삼성, 현대가 했던 것처럼 정부 지원을 받고 어느 정도의 비율은 정부에 주는 방식도 있다"고 제시했다. 조씨도 "한국은 생각보다 훨씬 잠재력과 파급력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는 이미 주어진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