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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성의 연극정담] 아직 세상은 살 만하구나

평생 동안 '무대멍석' 깔아
연극인 위해 '나눔의 멍석'
씨어터치 콘서트 큰 보람

[박명성의 연극정담] 아직 세상은 살 만하구나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새해 초부터 연극인복지재단 기금 마련을 위한 씨어터치 콘서트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무대를 지켜 온 연극인을 지원하는 연극인복지재단에 도움을 주신 기부자들을 위한 공연이니만큼 설레기도 하지만, 그 어떤 공연보다 마음이 쓰이고 조심스럽다. 행사에 동참해 달라는 전화를 걸 때마다 혹 부담 주는 것 아닌가 해서 손가락이 쭈뼛쭈뼛 머뭇댄다.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감사히도 강필석, 김경선, 김소현, 김순희, 루나, 마이클 리, 박건형, 박지연, 배두훈, 배해선, 손준호, 아이비, 정선아, 최재림, 최정원, 홍지민, 원기준까지 선뜻 재능기부하겠다고 나서 주었다. 한자리에 모을 수 없을 배우들인 만큼 티켓 판매 문의가 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어디 그뿐인가. 강주리, 김무호, 김선두, 김영삼, 김일해, 박인호, 신동권, 신흥우, 임남훈, 한홍수 등 대한민국 대표 미술작가들도 소중한 작품을 내어 주었다. 판매 수익금은 연극인들을 위해 기부된다. 이렇게 대가 없이 나서 준 이들 때문에라도 공연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눔은 주는 자, 받는 자 모두를 축복하는 미덕이라 했던가. 콘서트를 함께해 준 분들 모두 이미 기쁨이란 큰 축복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목 디스크로 찌부러진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매 순간 기적 같고, '아직 세상 살 만하구나' 싶다.

재단과의 인연을 돌이켜보면 사람을 중시하고 한번 이어진 관계를 중히 여기는 내 삶의 방식이 스스로를 '나눔이란 축복의 길'로 이끈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시작은 길해연 배우가 이사장에 취임했다기에 격려차 한 전화였다. 그때 격려만 하면 될 것을 서울연극협회 이사장을 할 때 부이사장으로 함께해준 것이 생각나 "뒤에서 도와줄게"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지금에야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됐으니 잘했다 싶지만, 그땐 '왜 그랬을까' 하고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굳이 구태여 또 일을 벌이냐'는 말이다. 재단 일을 뒤에서 돕겠다고 나섰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또한 그 말이었다. 하지만 병든 이를 위해 의료비를 지원하고, 힘겨운 상황에 놓인 연극인을 위한 긴급지원과 오랫동안 한길만 걸었지만 소외된 연극인을 찾아내 응원하는 사업들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 기부자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힘겨운 일로 좌절하다 재단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 연극인 중에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연극인을 돕겠다며 주머니를 털어 기부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나눔의 가치를 다시 느낀다.

그 연극인을 일으켜 세운 것은 돈이 아닌 세상의 관심과 응원이었을 것이다. 액수를 떠나 기부해주신 모든 분들께 당신의 손길이 이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꼭 전하고 싶다.

그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2023년, 100분 정도를 연습실에 초청해 씨어터치 콘서트를 열었었다. 모인 모든 이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며 나눔의 축복을 함께했던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벅찬 감동이 2025년, 1000석 규모의 극장으로 확장할 힘을 실어 주었다.
평생 막 뒤에서 무대라는 멍석을 깔아 온 내가 '나눔의 멍석'을 깔며 유독 긴장하는 이유는 무얼까. 모실 분들이 내게 너무도 귀한 인연들인지라, 행여 누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럽기 때문이리라. 그 묘한 긴장감에 요 며칠 기부에 동참하겠단 연락을 받을 때마다 '박명성, 너 연극하길 잘했다!'며 스스로 어깨를 다독이게 된다. 기부는 단순히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 들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또 어떤 멋진 변화가 찾아올지 벌써 가슴이 설레온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