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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모라비아 와인의 매력에 빠지다 [이환주의 와인조이]


체코 모라비아 와인의 매력에 빠지다 [이환주의 와인조이]
지난 2024년 12월 17일 진행된 ‘체코 모라비아 와인을 발견하다’ 시음회 참석자들이 다양한 모라비아 와인을 즐기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직접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네게 맞는 와인을 찾아봐야지."
소믈리에 자격증이 있고, 와인에 일가견이 있는 선배 기자에게 "맛있는 와인 좀 추천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우문현답이었다.

수백만 구독자를 가진 여행 유튜버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여행지 추천을 해달라는 질문을 수만번 받았다는 그는 "방구석에 앉아 남이 추천한 여행지에 가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인가"라는 취지로 말했다. 본인이 직접 발로 밟아보고, 경험해 보지 않고는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눈, 코, 입으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소주, 맥주와 달리 와인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소주 맥주도 종류가 많지만 와인의 다양성만큼 넓고 깊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주, 맥주는 브랜드와 이미지가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와인은 우선 국가부터도 수십개가 넘고 각 국가가 보유한 와이너리도 수백개, 또 제품도 많기 때문이다. 가격도 천차 만별이다.

와인 업계 사람들에게 와인 입문자를 위한 조언을 청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도 항상 비슷했다. "우선 접근하기 쉬운(저렴한) 와인부터 하나씩 하나씩 시도해 보면서 본인의 취향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레드 와인이 좋은지 화이트 와인이 좋은지, 프랑스 와인이 좋은지 이탈리아 와인이 좋은지 등 처음에는 크게 접근하고, 그 다음에 포도 품종도 생각해보고, 와이너리도 생각해 보면 된다는 것이었다.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 비싼 와인을 먹어보는 것도 좋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값비싼 오마카세 초밥을 리뷰하는 한 유튜버도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초밥집은 강남에 있는 한끼 30만원대의 어떤 가게인데 처음부터 초밥을 여기서 먹은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본인에게 부담없는 저렴한 판초밥부터 시작하는 편이 행복효용의 측면에서도 가장 좋다는 말이었다.

와인도 비슷하지 않을까.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 와인부터 시작해도 좋겠지만, 가격 접근성이 좋은 제3세계 와인부터 시작하는 것도 와인 입문자를 위한 좋은 안내가 될 것 같다.

체코 모라비아 와인의 매력에 빠지다 [이환주의 와인조이]
체코 국립 소믈리에 클라라 콜라로바. 체코국립와인센터 제공

체코 여행을 가야할 또 하나의 이유.. '모라비아'

"체코 남부의 모라비아 지역은 비엔나(오스트리아)와도 가깝고, 부다페스트(헝가리)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맛있는 음식과 체코의 와인들은 연휴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겁니다."
지난해 12월 17일, 체코 국립 소믈리에이자 유명 방송인인 클라라 콜라로바는 "체코 남부 모라비아 지역은 체코 포도밭의 96%가 있는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모라비아 지역 안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2곳이 있으며, 1200km에 달하는 와인 트레일을 따라 자전거 여행자의 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체코 보헤미아 출신인 클라라는 "보헤미아도 체코 와인의 4%가 생산된다"며 "모라비아에 갔다가 보헤미아로 와인 투어를 오시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는 2022년 체코 국립 소믈리에로 임명된 후에는 체코 와인을 알리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짧은 금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옆 머리를 시원하게 드러낸 그는 "국립체코와인센터가 운영하는 와인 살롱은 매년 연방 경연대회를 통해 체코 최고의 와인 100선을 선정한다"며 "3번의 라운드를 거쳐 100개의 와인을 선정 및 전시하고 방문객도 시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고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에 항상 '바로셀로나(스페인)'가 있었는데 여기까지 듣고 보 그 후보군에 모라비아를 추가해도 될 듯 싶었다.

체코 모라비아 와인의 매력에 빠지다 [이환주의 와인조이]
체코 모라비야 와인. 사진=이환주 기자

지난해 체코 와인 수입량 7배 증가

식품의약안전처 수입식품정보마루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11월 13일까지 국내에 수입된 체코 와인은 3t에 불과했다. 하지만 1년 뒤 같은 기간 22t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 수입 금액도 3만1000달러에서 9만9000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체코 와인은 이미 중세 유럽부터 널리 인정받았던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다. 9~10세기경, 대 모라비아 제국 시대에 슬라브족이 정착하며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체코의 왕이었던 카를 4세는 와인 산업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냈고, 체코 와인은 발전을 거듭했다. 14~16세기 일명 ‘체코 와인의 황금기’를 맞이하며, 체코 와인의 뛰어난 품질은 폴란드와 실레시아, 비엔나 황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 새로운 와인법이 통과된 1995년 이래, 체코의 와인산업은 환경 친화적인 농업과 현대적인 와인메이킹을 도입하며 다시 한번 도약했다. 오늘날 체코 와인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체코 남동부에 위치한 모라비아는 체코 와인의 90~95%를 생산하는 주요 와인산지이다. 기후는 주로 대륙성인데, 그 영향으로 포도의 성장기가 서유럽보다 짧고 여름철 온도가 높은 편이다. 이는 포도나무의 생장 기간을 단축시켜 늦게 익는 포도 품종도 숙성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한다. 생산되는 와인은 주로 화이트 와인으로, 신선하고 과즙이 풍부하면서 매력적인 산도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체코 모라비아 와인의 매력에 빠지다 [이환주의 와인조이]
‘체코 모라비아 와인을 발견하다’ 마스터 클래스. 체코국립와인센터 제공

모라비아 와인의 매력.. 몇 번은 더 봐야지

지난달 체코국립와인센터, 주한체코대사관, 체코관광청 한국지사의 공동 주최로 ‘체코 모라비아 와인을 발견하다’ 이벤트에서는 총 12종의 모라비아 와인 시음이 이어졌다.

각 와인별로 각 와이너리의 사업 시작 이야기부터 와인의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시음을 진행했다. 전문 소믈리에인 클라라는 몇몇 와인을 입에 머금은 뒤 맛을 음미하고 뱉어 냈다. 와인 초보인 기자는 대부분의 모든 와인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마지막 2~3종을 빼곤 대부분 화이트 와인이었다. 처음 3~4번째 와인까지는 각 와인의 맛과 바디감, 신맛과, 단맛 등을 구별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냥 별 생각없이 목구멍으로 상큼하고 투명한 청백빛의 액체를 넘겼다. 시음 세션이 끝나고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추가 시음회에서도 다양한 와이너리의 모라비와 와인을 즐길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취하기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1~2시간이 훌쩍 지나고 코르크를 연 와인을 집에 가져갈 수 있다기에 마음에 들었던 레드 와인 1병을 쥐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눈에 보이는 코르크로 병의 입구를 막고 맨손으로 병의 주둥이 부분을 쥐었다.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적절하게 열이 오른 뺨을 때리고 지나갔다. 언젠가 모라비아 와이너리에 가서 이날 맛봤던 와인의 오리지널을 맛보고, 자전거를 타고 체코의 땅을 돌아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