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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美 대통령 장례식의 품격

정적인 카터-포드 추모사
우린 눈앞의 집권에 집착
권력분립형 개헌 시급해

[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美 대통령 장례식의 품격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지난 9일 워싱턴에서 거행된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장례식의 백미는 단연 그의 과거 정적인 제럴드 포드 38대 대통령의 아들 스티브가 대신 읽은 추모사였다. 정치적 입장이 상반됐던 두 전직 대통령이 정계 은퇴 이후 평생 깊은 공감과 우정을 쌓아 갔음은 이미 많이 알려진 얘기다. 이들은 서로의 장례식에 추모사를 준비하기로 약속했고, 그래서 2007년 포드의 장례식에서 카터가 직접 참석해 추모사를 읽었다. 이제 카터의 장례식에 포드의 아들이 아버지가 생전에 써둔 추모사를 대신 읽은 것이다.

포드는 그의 추도사에서 카터를 '정직과 신뢰의 동의어'라고 매우 간결하게 표현했다. 현직 대통령 시절 많은 비판을 받았고, 그래서 다음 대선에서 실패한 카터였지만, 그가 평생 지키려고 애쓴 정직과 신뢰의 가치는 전직 시절에 더욱 빛났으며, 이를 그의 정적 포드도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카터는 퇴임 후에 미국민에게 더욱 사랑받고 인정받는 대통령이 됐다.

필자가 지난해 12월 4일 이 지면에 쓴 글 '미래 민주주의와 성찰적 다원성'은 게재 이틀 전 탈고한 글이었다. 바로 다음 날 12·3 비상계엄이 있었고, 그 이후 우리는 대통령 탄핵 정국의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용산·여의도·서초동의 대화 단절과 선을 넘는 정쟁으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 1987년생 정치질서의 한계를 넘어서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며, 그 방향은 '품격있는 다원성'이 되어야 하리라는 글의 '미래'가 바로 다음 날이었다는 것을 필자는 예측하지 못했다.

이제 대통령 탄핵의 판단은 안국동 헌법재판소의 몫이다. 대통령의 계엄조치가 '내란'이었는지,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사법부의 영역이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독립적이고 투명한 역할 수행으로 스스로의 권위와 국가의 품격을 동시에 지켜줘야 함이 자명하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1987년 헌정질서의 한계에 대한 자성과 함께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비교적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음은 다행이다. 40여년 전 우리 정치의 화두는 단연 민주화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가 일찍이 예견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문제를 당시에는 같이 생각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국민이 직접 선택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민주적 가치, 그리고 임기 중 국정운영 효율성이라는 가치의 '빛'에 가려진 과도한 권력 집중의 가능성, 그리고 국가기관들의 건강한 견제가 아닌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월권이 국정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그림자' 측면을 그동안 간과해 왔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절대 권력의 분립'이다. 대통령의 역할은 외교·안보에만 국한하고 책임총리제도로 운영되는 이원집정부제, 혹은 의회 중심 국정체제인 의원내각제를 고려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해 온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매우 낯선 제도다. 그렇다면 대통령 중심제를 기반으로 하되 국회가 선출해 추천하는 책임총리제를 혼합하는 방식의 권력 분립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국회가 선출한 책임총리가 국정과 행정 전반을 책임지게 함으로써 정부와 의회의 건강한 긴장과 협력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 사법부의 과도한 대립과 갈등에 대한 부드러운 조율이 그나마 가능한 제도다.

지금까지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가장 큰 이유는 눈앞의 정치공학 때문이다. 차기 대선에서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는 유력 정치인과 정당이 눈앞의 집권에 집착해 국가의 미래에는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정치의 목적은 집권 그 자체가 아니다.
지미 카터가 평생 지키려고 애썼던 정직과 신뢰,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와 인류의 미래 비전 제시와 실행. 이것이 바로 정치의 목적이다.

정치공학이 정치철학과 비전의 영역을 침탈한 정치에는 미래가 없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통령 장례식의 품격을 생각하는, 비장한 각오와 결단의 정치가 요구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