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식재료, 만지오카
물과 불 이용해 만든 카사바 가루
브라질 대부분 요리 재료로 쓰여
그 모든 과정은 지식이 아닌 지혜
아마존의 은혜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살아간다. 아마존강의 생태계는 지금도 문명세계와 접촉하지 않은 사람의 집단이 있다. 강 하구의 폭이 400㎞가 넘기 때문에, 한반도는 비교도 안 된다. 흘러내리는 강물의 양으로, 강 하구로부터 반경 100㎞ 바다까지 민물이 덮친다. 일년 중 대사리 때에 바다로부터 소강하는 파도는 상류의 1000㎞에 있는 산타렝까지 올라온다. 물살로 인해 강변의 나무들이 성냥개비의 도미노처럼 넘어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마나우스는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 위치한 대도시다. 그곳으로부터 아마존강은 두 갈래로 갈린다. 서북쪽으로는 히우 네그로(검은 강), 서남쪽으로는 히우 솔리몽에스(흰 강)다. 두 줄기 강물의 질량이 다르기 때문에 곧바로 섞이지 않고, 100㎞까지 분류된 모습을 보인다. 히우 네그로를 찾았던 나는 아마존에서 분홍빛 돌고래도 보았다. 얼마 전 아마존강의 강바닥이 드러난 사진을 보았다. 천재지변이라지만, 삼림 벌채의 결과다. 다음에는 대홍수가 날 것이며, 해수가 2000㎞ 상류의 마나우스까지 다다를지도 모른다. 문명 구축을 위해 동원된 지식의 역습으로 무너지는 아마존의 살림살이를 어찌할까.
브라질 사람들이 의존하는 음식의 원료들 중에 '파링야 지 만지오카'(카사바 가루)가 있다. 식탁에는 기본적으로 올라오는 음식이다. '페이조아다'라는 음식이 있다. 과거 대농장(파젠다)의 주인들은 돼지를 잡으면 껍질, 족발, 꼬리, 머리는 버렸다. 농장의 노예들이 그것들을 소금에 절여서 말렸다. 먹을 때마다 조금씩 물에 불려서 소금기를 제거한다. 페종이라는 검은콩을 삶는 솥에 소금기 뺀 부위들을 넣는다. 지금은 호텔의 메뉴판에도 빠질 수 없는 선호되는 브라질의 대표 음식이다.
브라질식 불고기(슈하스코)를 먹을 때도 반드시 따라오는 음식이 '파링야 지 만지오카'다. 마늘 절인 것과 '고비'(케일)라고 불리는 채소와 함께 섞어서 먹는다. '만지오카'라는 구근류로부터 가루를 얻기 위해서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다. 이 가루는 독성과 떫은 맛이 있기 때문에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도토리를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 동원되는 민구(民具)는 아마존의 인디오들로부터 유래한 '치피치'(tipiti)다. 식물에 내재하는 독성을 제거함으로써 식재료로 만들어내는 지혜가 축적된 도구다.
만지오카 가루를 물로 흘려보내서 전분을 얻는 기구
땅에서 파낸 만지오카를 가루로 만들어서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면 끝에 전분이 가라앉는다.
거꾸로 걸린 치피치
젖은 전분을 '치피치'에 담아서 물이 빠지도록 걸어둔다. 물이 빠진 전분을 가마에 올려놓고 굽는다.
만지오카 반죽을 치피치로부터 꺼내 가마에 올려 굽는 과정 전경수 교수 제공
굽는 도중에 가루가 타지 않도록 끊임없이 저어야 한다.
치피치라는 대롱 모양의 통을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치피치는 아마존 강변에 거주하는 투피(Tupi)족의 언어로부터 포르투갈어로 차용되었다. 치피치를 만드는 재료는 '부리치'(buriti)라는 이름의 야자수인데, '모리체 야자'(moriche palm)라고 한다. 이 나무의 잎사귀가 치피치의 원료다. 2m 이상의 길이인 잎사귀의 가운데 줄기가 두툼한데, 그것을 아주 얇게 가공해서 엮을 수 있을 정도로 탄력성 있고 부드럽게 만든다. 대나무(밤부)를 재료로 할 경우도 있지만, 신축성이 '치피치'의 생명이기 때문에 '부리치'가 선호된다. '부리치'는 코코넛을 열매로 하는 야자수가 아니라 열매를 달고 있는 줄거리에 작은 크기의 붉은 열매들이 가득 달리는 종자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재배하는 대추야자와도 비슷한 형태이나 뱀 껍질처럼 생긴 껍질을 까야 한다. 치피치를 만드는 장인은 손칼 하나면 되고, 동일한 넓이로 잘라낸 줄기를 가능한 한 얇게 벗겨내는 작업이 포인트다.
다음은 바구니 짜듯이 여러 갈래를 바닥에 놓고 엮는 과정이다. 반죽이 된 만지오카 가루로부터 수분을 짜내는 것이 치피치의 기능이다. 치피치 속에 가능한 한 많은 반죽을 넣음으로써 반죽 무게의 눌림에 의해 수분이 내려가도록 한다. 반죽을 치피치에 넣는 과정이 있다. 한 손으로는 치피치의 상부를 잡고, 한 손으로는 치피치에 만지오카 반죽을 담는다. 구멍이 좁기 때문에 반죽이 잘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치피치의 입구를 잡은 손에 힘을 줘서 아래로 누르면 신축에 의해 치피치의 길이가 줄어든다. 그 동작을 피스톤처럼 반복해 치피치에 반죽을 담은 뒤 일정 시간 걸어두면 물이 빠진다. 물이 빠진 반죽을 치피치로부터 꺼낸다. 화덕 위의 가마솥에 만지오카 가루를 올리고 열을 가하면 가루가 마르면서 구워지는 효과를 낸다. 하얀 색깔의 만지오카 전분이 노릇노릇하게 변한다. 덩어리가 엉키지 않도록 부수는 작업도 병행된다. 색깔이 전체적으로 골고루 노릇하게 변한 정도에 따라서 선호되는 '파링야 지 만지오카'가 완성된다. 아마존 사람들이 물과 불의 자연에 적응하면서 터득한 지혜가 살림살이의 근간이다.
아마존 인디오들의 탄수화물 공급원이 생산되는 과정으로부터 음식을 찾아나선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를 생각한다. 석기를 제작했던 지혜로부터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과정의 지식을 축적했음에 대해서 반추해 볼 문제가 있다. 혹자들은 '치피치'를 제작하는 과정을 전통지식이라고 말한다. 왜 지식 앞에 '전통'이란 단어를 수식어로 첨가할까. 과학적인 지식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급수를 낮추어서 '전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 아닐까.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지식을 수입했던 우리네의 삶은 동시에 많은 지혜를 상실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지식과 지혜는 구분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과학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학교 문 앞에 가보지도 않은 할머니의 지혜에 감탄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지식의 개념에 물든 학자연(學者然)하는 사람들은 살림살이에서 터득된 지혜를 생각하라. 김장을 하고, 된장을 만드는 과정의 체계적인 지혜의 심연을 읽어야 한다. 살림살이에 무심한 사람들이 과학을 논하면, 그 과학이 살림살이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지혜를 추구하고 분석하는 인류학이 근대화 과정에서 조각난 살림살이를 복기하는 방법이다.
세상은 편리해지고 냉철한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늘어만 가는데, 세상은 오히려 구렁텅이로 치닫는다. "옛날이 좋았지"라는 생각에는 연유가 있다. 지혜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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