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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리더의 오판] 숫자가 인격인 조직문화

최종 결과로만 선악 판정
'목적이 수단 정당화'하는
조직의 미래 암울하기만

[유효상 리더의 오판] 숫자가 인격인 조직문화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나심 탈레브가 쓴 '블랙 스완'에는 '붉은 여명'으로 명명된 사담 후세인 체포작전 성공으로 인한 증권시장과 언론 반응 사례가 실려 있다. 만약 후세인이 계획대로 생포되면 전 세계가 테러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엄청난 호재라서 안전자산인 채권 가격은 폭락하고 주가는 급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작전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채권 가격은 올랐다. 그러자 블룸버그는 '비록 후세인은 생포됐지만 테러는 계속될 거라는 불안감으로 미국 국채 강세'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불과 30분 후 채권 가격이 하락하자 급하게 기사 제목을 '후세인 체포로 위험자산 선호, 미국 국채 약세'로 수정했다.

같은 상황, 상반된 기사 제목은 얼마나 '억지로' 시장을 해석하려 하는지 그 실상을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오르거나 내릴 때, 환율이 상승하거나 하락했을 때 '왜 그랬는지'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상황이 이해가 안 되면 답답하고 불안하다. 무언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시장은 정답이 있는 수학 문제도 아니고,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호피 인디언도 아니다. 그야말로 복잡계다. 아무리 유능한 경제학자라도 부동산, 주식, 환율, 금리, 무역, 세계 경제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결과를 보고 사후에 그럴싸하게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스탠퍼드대 MBA 교수였던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는 21세기 최고의 경영고전 가운데 하나다. 위대한 기업의 DNA를 분석한 이 책은 나오자마자 경영학 분야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이 책에 등장한 위대한 기업의 대부분이 망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을 내고 그들 기업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성공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망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결과편향(Outcome Bias)'이다. 결과편향은 과거의 판단과 선택이 옳았는지 여부를 평가할 때, 당시의 상황이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는 나타난 결과만으로 단정해버리는 심리적 오류다. 조직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회사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프로젝트를 무모하게 추진한 것인지, 회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어려운 신규 사업을 솔선수범하여 진행했는지 등은 따지지 않고 단지 최종 결과만으로 쉽게 선과 악을 판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만 좋으면 영웅이 되고, 결과가 나쁘면 악당이 되고 만다.

몇 년 전 미국 보건복지부가 병원별로 수술 후 사망률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의료진과 병원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의료기술 향상에 매진할 거란 기대를 한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병원들은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의술 향상에 노력하기보다는 수술이 어려운 중환자를 거부하고 생존율이 높고 비교적 수술이 쉬운 환자만 받는 선택을 했다. 사망률을 낮추는 데만 신경을 쓴 것이다. 결과적으로 병원들의 수술로 인한 사망률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결과편향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결과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성과가 재임 기간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고위 임원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결과가 좋아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능력도 인정받기 때문에 심지어 불법이나 편법을 써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한다. 발각되지 않으면 속임수도 경쟁력으로 인정되는 암묵적인 관행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결국 능력이 있어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면 능력이 있는 것으로 둔갑하게 된다.
'숫자가 인격'이란 조직문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결과가 나쁘면 무조건 과정과 노력을 깎아내리고, 좋은 결과는 과정도 옳다는 식으로 보상한다면 공정하게 평가받고 싶어하는 우수한 인재는 조직을 떠나게 된다. 결국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조직의 미래는 없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