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의 고통이여 나의 친구여 !
희망의 종지기는 바로 자신
연초면 "복 많이 받으세요" 덕담 주고받지만 누군가는 "난 왜 복이 없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고통과 기쁨은 반드시 함께 오는 법. 힘들어 울고 있을 때 그 옆에는 좋은 일도 같이 있다. "여기 있었구나" 그것을 발견하고 알아봐 주는 일.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불행해지는 길이다.
일러스트=정기현 기자
새해다. 세상은 어지럽고 내 나라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그런 새해다. 그러나 딱 한 번밖에 없는 새해다. 지나가면 다시는 이 시간은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렘이 있다. 오늘 하루는 신이 내게 준 하얀 백지의 편지이다. 기억하자. 나에게 복을 빌어 준 새해 인사가 많았다. 덕담 또한 적지 않았다.
나는 그 복을 다 쌓으면 준재벌쯤은 될 것 같다.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들 쉽게도 복을 주었다. 새해를 잊었는가? 우리들의 새해 인사는 정말 훈훈하고 아름다웠다. 얼마나 우리가 복에 목말랐으면 새해가 되면 복으로 모든 인사를 대신하는가. 너무나 좋아하는 복을 모두 아쉬워하고, 아쉬운 만큼 새해에는 기필코 좀 풍족하게 가지고 싶은 것이 바로 그 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는 어둡고 불안하다. 정치적인 일이 이렇게까지 불안의 연속을 보여 준 때가 있었는가. 이런 시간도 발전을 위해 겪어야 하는 필수조건이 될까. 불안이 목을 조인다. 국격은 떨어지고 경제는 흔들흔들하고 그사이 문화는 헛발을 디딜지도 몰라 정말 불안하다. 지금 우리는 "제발 모든 것이 안정되게 하소서" 하고 전 국민 합동기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새해 인사는 아득하고 멀어졌다. 그래도 지금쯤 우리는 새해 인사의 복을 생각하자. 자,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고 있지 않은가.
태양은 떠오르고 대지는 열에 뜨거워 지글지글 끓어오를지 모른다. 사람들은 북적거리고 목소리가 떠들썩하고 자동차들은 거리를 메우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현실 속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그 인파 속에 서 있을 것이다.
조금은 짜증이 나고 사람들 속에서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그렇다, 나는 새해에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그 복이 오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복을 받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내 복에 다시 복이 오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들 마음 자세나 얼굴 표정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복을 받을 사람이 화를 내고 있거나 짜증을 내고 있으면 복이 놀라서 혹은 민망해서 그 사람을 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집안에서는 나 혼자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조차 복이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경건히 즐겁게 맞고 그리고 웃는 얼굴을 하지 않겠는가. 복은 밝은 얼굴을 좋아한다는데 우리가 화만 내고 있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새해에 그렇게 많이 복을 주고 복을 받은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런데 복은 뭘까? 사실은 우리들의 지난 생활에 복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내 생각이다. 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주어진다. 복이라고 느끼지도, 복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은 민망해서 사라지는 게 아닐까.
복은 자기를 잘 알아주는 사람에게 머문다. 복은 사람보다 영민하고 눈치가 빨라서 자신을 우대하거나 친절한 사람에게 웃으며 가고, "이것도 복이라고 할 수 있나?" 하고 복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서는 절대적으로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복의 성질이라면 성질이다. 사람하고 다르지 않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인간의 속담이 복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복이 온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복은 아침이 누구에게 오듯 누구에게나 왔었다. 그러나 알은척 반기는 사람이 있고 네가 무슨 복이냐고, 나는 복이라고는 없다고 하면 복은 몸 둘 곳을 몰라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 그 고통만을 안고 어찌 사냐고 울고 있을 때 그때 우리 옆에 복이 있었다.
이 세상에 오는 고통은 반드시 좋은 것과 함께 온다. 고통과 씨름하며 싸울 때 좋은 복은 심심하고 배가 고파 죽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은척도 하지 않는데 왜 복이 그곳에 머물겠는가. 우리가 이와 같다면 오늘도 복은 우리 옆에서 굶어 죽을지 모른다. 복을 비는 일보다 내 옆에 있는 복을 알아 챙기는 일, 내 복이 여기 있었구나 알아주는 인사성부터 챙겨야 할 것 같다.
"왜 이렇게 진저리나게 복이 없는지…" 하고 말하면 복은 진저리치면서 사라지는 것이다. "어머나 내게 이런 복도 있었네" 하고 감탄하면 졸고 있던 복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우리에게 달려온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입으로만 복을 말하지 말고 우리에게 있는 복을 발견하고 알은척해 주는 습관부터 길러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하얀 빛깔로 복이 내게 오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흰빛에 자기 나름의 새로운 희망의 도표를 그리고, 거기 자신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라는 의미로 새해는 흰빛의 백지로 우리에게 오는지 모른다.
제발 제발 원하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창조한 역사의 나라다. '개인욕심'을 버리고 나라사랑이 변화를 가져오길 바란다. 어제 절망으로 존재 자체를 포기하고 싶었던 사람들도 내일이 있다는 것, 그 단 하나의 희망으로 포기를 도전으로 바꿔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들의 삶은 피아노의 건반처럼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는 음표 같은 것인가. 그런가. 너무 높은 음은 목에 손상을 가하지 않을까. 제아무리 희망이 좋다고 한들 목이 터져라 부르면 희망은 오는 것인가. 우리는 잘 안다. 희망은 부른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은 복을 사랑해 주면 그 복은 자라 큰 복이 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조금 덜 불행할지 모른다.
그렇다. 오늘의 복은 '안정'일 것이다.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희망의 종지기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복이여!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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