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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구를 위한 철도요금 동결인가

[기고] 누구를 위한 철도요금 동결인가
고길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에서는 짜장면 값을 얼마로 할지 서로 싸우지 않는다. 가격이 비싸면 저렴한 중국집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철도요금,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은 매년 서민물가 등을 이유로 가격을 인상해야 할지를 가지고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공급이 거의 독점에 가깝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라 시장에 맡기면 과잉공급 혹은 과대 이윤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것이 과연 이익이 될까? 철도요금을 보자. 철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철도공사의 부채는 2024년 20조원 정도다. 같은 공기업 한전의 부채가 200조를 넘고 있으니 10분의 1 수준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을까? 현대자동차 부채가 24조 원 정도니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다. 낮은 요금으로 철도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현세대에게 이익일지 몰라도 누적되는 부채는 결국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한다.

공공요금 인상은 정치적 부담이 따른다. 한번 오르면 내리기 힘들어 다음 세대에게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요금동결은 어차피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또한 적자가 쌓이면 현세대도 피해를 본다. 교통약자에 대한 철도 혜택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줄고 낙후된 철도시설에 대한 재투자도 미뤄진다. 국민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코레일에 따르면 준고속철도와 일반철도 노선 16곳 중 3곳을 제외한 모든 노선에서 최근 5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열차를 운행해서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특히 2020년 1조1685억원의 적자를 비롯해서 지난해 4743억원의 적자에 이르기까지 매년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14년간 요금은 동결되었지만 소비자 물가는 24.2% 올랐으니, 원가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분은 결국 적자와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다. 자산매각, 사업조정, 경영효율화, 수익확대 노력을 해 2023년 3000억원 이상의 효율화를 달성했어도 부채 감소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철도요금은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필자는 공기업에 대한 신뢰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철도요금은 정부 부처 간 협의를 바탕으로 운임의 상한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상식적으로는 서비스 원가에 적정 이윤을 보장하는 가격이 가장 타당해 보이지만, 정부는 공기업이 산정하는 원가가 과대 추정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방만 경영을 지적하며 경영효율화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결국 공기업을 믿지 못하겠으니 정부가 통제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등 적지 않은 선진국은 운영사의 운임 결정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중2병이라는 현상이 있다. 청소년이 자아를 찾는 과정과 부모의 간섭이 충돌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중2병 아이들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을 자주 한다. 부모로서는 피곤한 상황이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나라에서 아직도 정부는 공기업의 자율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의 눈치만 바라보는 공기업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여 혁신하려는 의지를 꺾는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로 남기 바라며 책임은 회피하는 피터팬증후군에 빠지게 된다.

과거에 안주하고 혁신하려는 의지를 꺾고 미래세대의 부담만을 가중시켜 좌절감을 누적시켜가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코레일의 당당한 홀로서기를 위해서도 철도요금의 인상을 미룰 수는 없다. 인상된 요금으로 교통약자를 보호하고, 안전한 철도서비스와 미래세대에 맞는 새로운 철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 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 구조 변화 없이 더 나은 사회를 미래세대에 물려줄 수 없다는 것에 우리는 공감하고 있다. 가격통제라는 낡은 사고방식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자율성과 공기업의 자립성을 위해서라도 요금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

고길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