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중소기업의 경영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는 1월 기준 68.1로,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2월(69.3) 이후 47개월 만에 60대로 떨어졌다. 소상공인의 절반 이상이 올해 경영환경이 지난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올해 경기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외환위기) 때보다 안 좋을 거라는 푸념도 나온다.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산업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블러 현상 속에서 중소기업 간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는 혁신을 통한 새로운 방식의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으로 인해 혁신 투자에 소극적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혁신활동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중소기업 연구개발비는 2023년에 감소세로 전환됐으며, 민간 연구개발비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23.3%에서 2023년 21.8%로 1.5%p 줄었다. 대기업 대비 중소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수준은 2019년 32.5%에서 2022년 29.0%로 3.5%p 감소했다.
혁신기업에는 경제위기가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호황은 좋고, 불황은 더 좋다'고 했으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위기만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창업한 한 포털기업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던 인터넷 시장에서 한국어 검색에 특화된 알고리즘을 개발, 한국의 대표적인 IT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한 물류기업은 소비 트렌드 변화를 간파한 시스템 혁신을 통해 돌풍을 일으키면서 미국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중소기업은 영세하고 외부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중소기업 연구소는 3분의 2가 연구원 5명 미만으로 소규모이지만, 대부분이 단독으로 연구하고 연구개발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국내외 기업 및 대학과의 협력 네트워크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가에서 최하위권 수준이다. 중소기업이 부족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 간 협력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업 간 공동·위탁 연구와 인수합병(M&A)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동·위탁 연구개발비에 대해 세액공제율을 일반 연구개발비보다 높게 적용하고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혁신형 M&A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개 기능을 강화하고 매수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면 좋겠다.
둘째,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중소기업 협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예산 및 인력 제약을 극복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문제해결형 프로젝트가 더 많아져야 한다.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에 대해서는 학위 취득 및 취업과 연계를 지원하고, 출연연 연구자에게는 보상 시스템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소기업 재직자의 사기진작과 성과보상을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중소기업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중소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경영성과급에 대한 세액공제율(10%)을 연구개발비와 인력개발비 수준(25%)으로 현실화하고, 벤처기업이 임직원에게 성과 달성을 조건으로 지급하는 성과조건부주식에 대해서는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에 상응하는 과세특례를 부여해야 한다.
중소기업 혁신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경제위기 시대에 중소기업이 협력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는 법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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