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대한항공과 같은 대형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와 제주항공과 같은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는 하나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체재인가 아니면 별개의 시장으로 분류되는가. 이는 결국 소비자가 이 두 종류의 상품을 대체재로 인식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만약 대형항공사들의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할 때 소비자가 대거 저비용항공사로 이동해 가서 대형항공사의 수요가 급감한다면 이 두 종류의 상품들은 대체성이 크고, 그래서 하나의 시장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가 항공 대신에 고속철도를 선택한다면 이들 역시 하나의 시장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의 차이가 주로 서비스 품질에 있다고 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있다. 특히 운항시간이 짧은 국내선의 경우에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그만큼 가격이 낮다면 저비용항공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그래서 국내선은 저비용항공사의 점유율이 60%를 상회하며 가격 차이도 크지 않다. 소비자가 이들을 긴밀한 대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심의할 때, 이런 논리를 근거로 하여 대형항공과 저비용항공을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국내 두 대형항공사가 결합하더라도 다른 경쟁사들이 많으므로 시장의 경쟁을 심각하게 제한하지 않는다는 결론하에 두 회사의 합병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인식은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비스 품질처럼 쉽게 체험하여 확인할 수 있는 차이에 대해 소비자는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좌석의 안락함, 기내서비스 수준, 정시운항 정도 등은 겪어보면 알 수 있고 수치 통계로도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안전은 다른 문제이다. 비행기의 기종과 기령, 설계나 관리상의 결함 여부 등은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힘들다. 조종사들의 능력과 피로도, 기체 정비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 등도 알기 어렵고 그것들이 항공안전에 미치는 영향도 평가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항공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항들의 안전도도 동일하지 않다. 소비자는 그저 정부가 이런 점들을 전문적으로 검토하여 모든 항공편에 대해서 충분한 안전성을 보장하도록 철저하게 규제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즉 소비자는 정부 규제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이 모든 항공사의 안정성을 동일한 수준으로 담보한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항공사들의 대체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번 제주항공의 사고는 이런 소비자의 믿음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조류충돌 방지책,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의 대처, 비상착륙에 대한 공항의 대비 정도가 소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활주로 끝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허점들이 잠재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통감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저비용항공사들이 기내서비스 비용뿐만 아니라 정비나 항공스케줄 등 모든 면에서 최대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는 뉴스들이 계속 올라오면서 저비용항공사의 안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당연히 대형항공사에 대한 선호의 강화로 이어진다. 시스템이 불완전하면 개별 항공사의 능력과 신용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으로 국내 대형항공사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이 합병을 최종 승인하면서 공급 좌석수 유지와 물가상승률 이상의 운임인상 금지 등의 시정조치를 통해 통합항공사의 시장력을 계속 견제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쟁을 촉진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은 안전기준을 제고하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 소비자가 안심하고 저비용항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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