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과 첫 내한한 로버트 패틴슨 배우.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불쌍한 미키를 원작보다 10번은 더 죽인 피도 눈물도 없는 봉준호 감독님."
영화 '미키 17' 예고편에 달린 댓글이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미키 17'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에선 7번인데 17번으로 늘린 이유는 노동의 일상성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며 "7번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이 원작인 '미키 17'은 2050년대를 배경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다. '트와일라잇' '더 배트맨'의 로버트 패틴슨이 창업했다가 망하고 '익스펜더블(소모품)'이란 직종에 지원, 우주에서 일하게 된 미키를 연기했다.
봉감독은 주인공 미키에 대해 "정말 불쌍하다. 왜 불쌍한가"라고 반문한 뒤 설명했다.
"이 친구의 직업 자체가 죽는 일이다. 반복적으로 죽고, 죽을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현장에 투입된다. 17이라는 숫자가 열일곱번 죽었다는 의미다. 죽을 때마다 새롭게 프린팅된다. 이는 기존 SF영화 속 복제인간과 상당히 다르다. 프린터에서 서류 뽑듯이 인간이 출력된다는 자체가 비인간적이다."
원작소설에서도 기본 콘셉트가 '휴먼 프린팅'이다.
봉 감독은 "미키는 극한에 처한 노동자 계급"이라며 "영화에 계급 문제가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정치적인 깃발을 내세운 영화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친구가 얼마나 불쌍한가, 그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미키의 성장영화"라고 덧붙였다.
성대 갈아끼운 패틴슨? 어릴 적 본 TV쇼 캐릭터에서 영감 받아
극중 로버트 패틴슨의 달라진 목소리 톤도 눈길을 끌었다. 블랙 코미디 터치의 영화 톤, 캐릭터 성격과 높은 일치율을 보이며 연기 변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네티즌들도 "패틴슨 성대 깔아 끼웠네" "'더 배트맨'에서 중저음의 간지나는 목소리 낸 그 배우 맞냐. 이런 억양 예상 못했다"며 감탄하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패틴슨은 목소리 톤에 대해 "목소리는 작품을 할 때마다 논리적으로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릴 적에 즐겨보던 TV쇼가 있는데 그 캐릭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 목소리를 흉내내다가 여러 시도 끝에 미키 목소리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미키 17은 굉장히 불쌍하고 수동적인 캐릭터다. 두려움이 많고, 진정으로 자신을 루저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흘러가는대로 놔둔다. 그러면 최악은 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거울을 응시하고 스스로를 얼마나 해치고 있고 또 얼마나 삶을 허비하는지 그런 생각조차 안한다."
그러다 잘못 프린트된 미키 18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패틴슨은 "미키 18은 뇌의 일부가 다 프린트되지 않은 버전"이라며 "미키 17의 잠재된 자아로서 미키 17을 질책하는 모습이 마치 무서운 형과 같다. 동시에 (미키 17에) 애정이 있다"고 두 캐릭터를 비교했다.
영화 '미키 17' 보도스틸.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봉 감독은 "사실상 1인 2역"이라며 "미키 17이 약간 멍청하고 불쌍하다면, 미키 18은 기괴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광기 어린 캐릭터"라고 분석했다.
그는 "패틴슨은 독립영화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 놀라운 연기를 보여줘 늘 관심있게 지켜보다가 이번에 러브콜을 보냈다"며 "캐스팅 과정은 순조로웠다"고 말했다.
패틴슨은 "이런 규모의 거대한 영화에서 이렇게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며 "용감하고 유머를 잃지 않는 영화다. 러브콜을 받고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고 답했다.
봉 감독은 또 원작에선 미키가 역사 교사지만 영화에선 친구와 마카롱 가게를 창업했다 망하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청년으로 설정했다.
그는 왜 마카롱 가게였냐는 물음에 "개인적으로 마카롱을 좋아한다. 다쿠아즈도 좋아해 커피와 자주 먹는다"고 답했다.
봉 감독은 원작과 영화가 다른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원작에선 미키가 역사 교사라 지적인 이야기도 늘어놓는데 노동자 계층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외로운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원작에선 또 과학기술적인 설명도 아주 많은데, 과학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땀 냄새 나는 인간 이야기로 쫙 채워나갔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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