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웨이브'는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재난을 통해 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생생히 보여준다. 주인공인 지질학자 크리스티안은 산사태와 함께 거대 쓰나미 발생 가능성을 데이터로 예측하지만, 동료들은 단순한 오류로 치부하며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을 덮친다.
만약 당시에 다양한 재난안전데이터를 공유하는 플랫폼, 인공지능 기능을 장착한 CCTV, 그리고 신속한 재난경보 알림시스템 등 여러 가지 기술적 도구들이 함께 작동해 주인공의 데이터 분석 결과가 제대로 인정받는 환경이 마련됐다면 위험은 더 정확히 예측되고, 더 빨리 전파돼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후위기, 신종 재난 등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재난 양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며 기존 경험과 방식만으로는 효과적인 재난 대응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재난안전관리 체계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재난안전 데이터는 각각의 재난관리 기관의 입맛에 맞게 생산·보유해 왔다. 그러다 보니 기관 간 데이터 연계·공유·활용 등에 한계가 있었다. 민간에서도 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재난안전 데이터를 얻기 위해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행정안전부는 2022년부터 재난안전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유형별로 수집·연계·공유·개방하는 '재난안전데이터 공유플랫폼' 구축을 추진, 올해 1월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현재 산사태·폭염·지진·산불·감염병 등 재난 유형 57종, 재난안전데이터 1800여개를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해서 개방데이터를 보강할 예정이다.
올해 데이터 활용을 위한 기초적인 기반을 마련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올해를 '재난안전데이터 활용의 원년'으로 삼아 데이터 활용 우수 사례를 적극 발굴해 전파할 것이다. 지속적인 데이터 품질 개선과 함께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은 '수요자 맞춤형 데이터'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23년 4월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 상황을 가스회사 등과 실시간 공유해 주변 가스충전소와 사업장 등 1574곳에서 안전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 2차 피해를 막았다. 지난해 5월에는 폭염·한파쉼터 및 대피소 정보를 통합한 '통합대피소 API'를 민간 플랫폼사의 지도앱에 제공해 국민이 쉽게 대피소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올해는 지반 굴착공사로 인한 지하시설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건설기계 제조사의 '실시간 굴착기 위치정보'와 이동통신사의 '통신케이블 매설정보' 간의 데이터 중계를 시작으로 가스·전기·송유관 등의 지하시설물 전반으로 연계하고자 한다.
국민 안전을 위한 데이터 활용뿐 아니라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도 힘쓸 예정이다. 정부 보유 재난안전 데이터의 민간 개방을 계속하면서 관련 협회·연구기관·대학 등과 연계한 창업 지원, 대학생·창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도 확대한다. 아울러 재난안전데이터 활용 기업에 대한 컨설팅 지원과 재난안전산업박람회 참여 기회 제공 등의 정책도 펼쳐 나간다.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과학기술 역량을 총동원한 혁신적 접근법이 꼭 필요하다. 더욱이 지금까지 데이터의 중요성과 활용을 강조했지만, 현장의 세심한 관심과 즉각적인 대응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온전한 의미의 과학적 재난안전관리는 완성될 수 없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일상생활의 숨 쉬는 공기처럼 데이터가 재난안전관리 각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나아가 인공지능과 접목하여 안전한 미래를 여는 단초가 될 수 있길 꿈꿔본다.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