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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동북아 안보 리뷰] 핵보유국 북한과 한국의 생존 전략

트럼프, 北 핵보유국 지칭
한국 패싱, 안보불안 심화
핵 잠재력 보유만이 살길

[남성욱 동북아 안보 리뷰] 핵보유국 북한과 한국의 생존 전략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1964년 중국의 마오쩌둥은 자국의 핵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보고를 받고 한마디만 했다. "어차피 써먹지는 못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미소에 중국도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정확하게 알려 주거라." 사실 마오는 가난한 사회주의 신생국가가 핵무기를 만드느라 살림살이가 거덜 날 것을 우려해서 핵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소련 등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강대국이 핵으로 위협했을 때 대안이 없다는 군부의 보고를 받고 핵 개발에 나섰다. 마오는 핵의 억지력(deterrence)에 의한 공포의 균형 전략을 정확히 간파했다.

중국이 핵보유국이 되자 국경을 맞댄 인도 군부는 모의전쟁 결과 핵무기 없이는 전쟁이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1974년 핵실험에 성공한다. 인도에서 분리 독립한 파키스탄 역시 같은 논리로 핵 개발에 나섰다. 암스테르담 핵물리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자국 출신의 압둘 카디르 칸을 불러들여 마침내 1998년 핵 개발에 성공했다. 중국에서 인도를 거쳐 파키스탄에 이르는 핵 개발 과정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간에 핵 딜레마를 상징한다. 재래식 무기(conventional arms)로는 핵무기를 방어할 수 없다는 핵의 비대칭성(asymmetric)은 비핵국가들의 안보 불안을 심화시켰다.

1968년 유엔안보리 5대 상임국은 핵 확산을 막기 위해 핵비확산체제(NPT)를 출범시켰다. 이후 핵실험에 성공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북한은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의(de facto)'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간주됐다.

지난 2006년 이후 북한에서 6차례의 핵실험이 감행됐고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6자회담과 미북 정상회담 등 다양한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보유를 무시하려는 국제사회에 맞서 지난해 9월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핵보유국으로서 갖는 국제적 위상과 프리미엄을 누리기 위한 공개 압박전략이었다. 공식과 비공식 핵보유국은 비핵화 협상의 기준이 다르다. 공식 보유국들은 상호 간에 핵 군축협상을 하지만 비공식 핵보유국과는 핵을 완전히 없애는 비핵화 협상이 우선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는 물 건너간다. 오직 핵무기 보유를 동결하거나 일부 축소하는 핵 군축만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간다. 평양은 비핵화의 대상이 아니라 핵보유의 주체로서 독재자 김정은의 위상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북한을 핵보유국(nulcear power)으로 지칭했다. 미북 협상을 위한 밑밥을 던졌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후보자 역시 청문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북핵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지난해 북핵 현실 인정론을 언급했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김정은의 지적대로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북핵 대세론과 함께 미북 직접 접촉은 한국 패싱에 따른 안보 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에 올인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스몰딜을 1단계 비핵화로 포장하면서 평양과 핵 군축협상에 나설 것이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노딜로 끝난 부분 비핵화만으로도 협상이 성공적이라고 포장할 것이다. 영변 핵의 비핵화만으로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북한에 콘도를 건설해주는 등 보상안은 트럼프의 유인책이다.

재래식 무기만으로 한국의 안보를 수호하려는 노력은 공허해지고 있다. 거래적 동맹에 올인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확장억제를 충분히 제공할 수는 없다.
한국의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핵 잠재력 보유를 위한 로드맵을 어떻게 시작할지 이스라엘 등 핵보유국 사례를 정밀하게 연구하고 기술적 발전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북핵의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에 핵 잠재력 구축을 위한 가시밭길의 긴 여정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