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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노동문제, 과학적 접근 필요

[서초포럼] 노동문제, 과학적 접근 필요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

고도성장을 해온 우리 경제는 1990년대 이후 성장이 정체되더니 최근엔 2∼3%의 저성장률을 보였다. 추세적 성장 정체는 1인당 소득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으나, 적지 않은 부분이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어 문제다.

IMF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노동유연성 악화다. 강력한 법적 절차와 해고 시 높은 퇴직비용 부담 등으로 우리의 고용보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강하다. OECD 국가들의 고용보장은 점차 줄어들어 왔으나 우리나라에선 고용보장 수준이 거의 변하지 않은 데에 주로 기인한다.

한편 2018년 도입된 주당 52시간 근로제도 문제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유연근로제(Flexible Working Time Arrangements)하에서 일하는 한국 근로자 비중은 7%에 불과하다. OECD의 평균 약 30%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2021년 현재 한국은 OECD 국가 중 조사대상 29개국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철저한 고용보장과 엄격한 근로시간제에 의한 노동유연성 악화는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우선 고용보장은 노동시장 이중성과 근로자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정규직에는 좋은 일일 수 있으나 비정규직 삶은 고달프다. 정규직들은 강력한 해고제한은 물론 비정규직 대비 더 높은 임금을 보장받는다.

반면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대비 절반 수준의 낮은 임금과 높은 해고율에 직면해 있고 연금, 건강 그리고 고용보험 등에서 차별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고용보장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고용주들이 여타 노동유연성 확보 수단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해고가 상대적으로 쉬운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2021년 현재 한국은 총근로자 중 임시근로자(Temporary Employment) 비중이 약 25%로 OECD 국가 중 응답국가 32개국에서 가장 높다.

비정규직 비중 증가는 현장 기술축적을 어렵게 하면서 생산성을 악화시킨다. 현장경험을 쌓아 기술축적이 가능해질 때마다 인원이 교체되기 때문이다. 2023년 OECD의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초저출산율도 상당 부분 비정규직 비중 증가에 기인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 근로자 대비 결혼과 출산율이 약 1.9배 높다.

한편 업종·직종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도입된 주당 52시간 근로제는 집중적 연구개발(R&D)을 어렵게 하고, 수요급변에 대한 대응을 지연시켜 생산성을 악화시킨다.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잠재경제성장률을 낮추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성장과 기업 위주 실용주의 정책을 천명했다. 동시에 모순되게도 인수합병(M&A) 등 기업의 사업재편 과정에서 근로자 고용승계 의무화를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용역업체 변경 시에도 새로운 업체가 기존 업체 소속 근로자를 그대로 고용토록 하고, 원청이 하청에 근로자를 파견할 때 맺는 계약서에 근로자 임금, 파견수수료 등을 명시하고 공개토록 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근로자를 보호할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 효과는 불투명하다. 노동유연성을 악화시켜 앞서 본 대로 비정규직 비중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의사의 환자에 대한 처방이 여론과 보호자의 요구가 아니라 엄격한 과학적 진단에 의거해 이뤄지듯 정부의 노동시장 개입도 과학적 진단에 의거해 이뤄져야 한다. 특정 계층의 단기 이해를 고려해 도입하는 제도는 장기적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일자리를 줄여 근로자의 삶을 궁핍하게 할 우려가 있다. 노동 문제에 대한 장기적·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