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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시도통합, 기대반 우려반

[fn광장] 시도통합, 기대반 우려반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21세기 초입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난제 중 하나는 지역소멸 위기일 것이다. 난제란 표현에서 읽혀지듯이, 증상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데 처방은 신통치 않다. 정부 차원의 처방전이 나오고 있다지만 아직 이렇다 할 약효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니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난국에서 지방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광역자치단체 간 통합 시도가 그것이다. 이 논의는 도·도 간 통합보다는 대구·경북 통합과 같이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도와 광역시 간 재결합에 무게를 두고 진행되고 있다.

과연 시도통합이 지역위기를 타개할 돌파구(breakthrough)가 될 수 있을까. 지역위기의 주범은 지역인구 유출이다. 과도한 수도권 인구쏠림이 지역공동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유출을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원심력(인구유출)을 상쇄할 수 있는 구심력(인구흡수)을 키우는 것이다. 인구덩치를 키워 구심력을 높이는 것이다. 생각건대 인구에는 특이한 성질 하나가 있는 듯하다. 그것은 인구덩치가 일정 규모 이상을 넘어서면 우주 속 행성처럼 주변 인구를 끌어당기는, 소위 '인구중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구중력은 인구덩치가 커질수록 더 강해져 인구흡입력을 높인다. 수도권이 오늘날 거대한 인구 블랙홀로 변한 것도 인구중력이 강력하게 작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구덩치를 키우는 시도통합 방식은 일견 기존 처방들보다 유의미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점이 있다. 구심력을 키우는 인구중력 증가는 인구밀도가 높아져 그 결과로 인구덩치가 커질 때 생긴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인구중력이 큰 것은 비단 인구덩치만이 아니다.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통합의 경우 통합지역의 인구증가는 인구밀도가 높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두 지역 인구의 단순 합산 결과로 인한 것이다. 즉 외부인구가 통합지역에 새로 유입되어 인구덩치가 커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기존 인구수의 합만으로 인구덩치를 키우는 것은 인구중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 인구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소 진부한 답이긴 하지만 지역 매력을 높이는 것이다. 기업하기 쉽고, 살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 역내인구의 유출을 줄이면서 역외인구를 가져오는 것이다. 두 지역이 통합되면 행정구역이 넓어지고, 관할 인구수도 많아지기 때문에 자치단체 지위는 격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치단체 지위 승격 그 자체만으로 지역 매력이 저절로 좋아지진 않는다. 별도 추가 처방이 따라줘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도통합은 문제 해결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통합지역의 총인구수가 다른 시도보다 훨씬 커졌으니, 이에 상응한 대접을 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할 강력한 '지렛대' 하나를 만든다는 데에 시도통합의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결국 시도통합 노력도 실효적 처방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 호응이 관건이라는 소리가 된다.

'순망치한'이다. 지방이 사라지면 중앙도 존속하기 어렵다. 시도통합은 기득권을 던져야 하는 어려운 결단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지방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정부는 지방의 이런 노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지방이 어려운 결정을 하는 만큼, 정부도 과감한 분권으로 부응해 주어야 한다. 그야말로 '줄탁동시'가 필요하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정부는 대구·경북이 통합되면 이들 지역을 특별시에 준하는 자치단체로 격상해 줄 방침이라고 한다. 나아가 다른 지역에도 통합을 권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바라건대 시도통합이 행정기구 확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의 매력을 크게 높일 과감한 정부투자와 권한이양을 가져오는 큰 물꼬가 되어야 한다. 어렵게 추진되는 시도통합이 또 하나의 오답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