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한 기업가 정신 강점
수평적 소통·협업 활성화
창의적 인력이 '장벽' 넘어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지난 설 연휴에 혜성처럼 등장한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뜨거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딥시크는 저비용으로 정확도가 우수한 생성형 AI 모델 R1을 개발하고,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AI를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고가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규모로 가동해야 한다. 수십조원의 투자가 소요돼 우리 기업들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중국의 일개 신생 스타트업이 미국 거대 테크기업에 필적하는 AI를 개발했으니 놀라운 일이다. 딥시크의 영향력이 커지며 의문과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딥시크의 AI 성능이 과대포장됐고, 개발비용은 과소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픈AI의 데이터를 도용했다거나, 사이버보안이 취약하고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아 답변과 정보를 왜곡한다는 약점도 거론된다.
선도기업의 기술을 이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한 딥시크의 기술이 파괴적 혁신이라고 부를 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점은 사실이다. 다만 딥시크가 혁신을 추구하는 방식은 매우 특별나 여러 가지 배울 만한 교훈을 찾아볼 수 있다. 딥시크의 특출난 강점은 투철한 '기업가정신'이다. 창업자 량원펑은 AI 투자기법을 이용한 헤지펀드를 설립, 상당한 자산을 축적했다. 헤지펀드 회사에 소규모 AI 연구소를 설치해 운영하다 '인간 수준의 범용 AI'를 만들기 위해 2023년 5월 딥시크를 창업했다.
량원펑은 딥시크의 목표를 AI기술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것보다 인류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보편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둔다. 이런 정신을 살려 딥시크는 소스코드와 설계도를 대중에 공개하는 '오픈소스' 개념을 신봉한다. 통상적으로 오픈소스는 사용자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선택한다. 하지만 딥시크는 AI 혜택의 확산과 생태계 발전을 위해 오픈소스를 채택한 것이다. AI업계에서는 딥시크가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기술을 공유하려는 의지가 훨씬 강하기 때문에 위험한 경쟁자라고 여긴다. 경제적 이득보다 정신적 이념이 더 무서운 무기이다.
딥시크가 창업한 지 2년도 안 돼 AI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역동적 조직문화 덕분이다. 딥시크는 경험이 적은 젊은 직원들을 주로 채용해 타성을 배제하고자 했다. 딥시크에서 경력이 3~5년이면 최고참이다. 사내에 계층과 부서의 구분이 없어 수평적 소통과 협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미국의 테크기업들은 대체로 경험이 많고 능력을 검증받은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한다. 풍부한 경험에 의존하면 기술 개발은 효과적이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에 부딪힌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더 심각하다. 계층이 많고 부서 간 칸막이가 심해 소통과 협업이 어렵다. 국내 대표급 IT기업에서는 젊은 직원이 혁신적 알고리즘을 제안해도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팀장이나 임원이 거절하기 일쑤라고 한다. 관료주의가 팽배해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방식의 혁신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딥시크는 유기적 조직문화와 창의적 인력을 바탕으로 AI 개발을 가로막는 제약조건을 극복해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제재로 앤비디아의 고사양 AI 반도체를 사용하지 못하자 저사양 칩을 사용해 오픈AI의 챗GPT 못지않은 성능의 모델을 개발해 낸 것이다. 선도기업의 기술보다 더 뛰어난 알고리즘 설계 능력으로 진입장벽을 초월해 'AI판 스푸트니크'라는 칭송까지 얻었다.
딥시크의 등장에 충격받아 우리 정치권과 산업계는 난리가 났다.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중국처럼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AI기술을 개발하자고 한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하면 딥시크 정도의 AI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딥시크와 같은 혁신적 스타트업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혁신기술은 모방할 수 있어도 혁신기업은 모방하지 못한다. 정말 부럽다. 언제나 우리나라에서도 딥시크 못지않게 혁신적인 기업들을 볼 수 있을는지.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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