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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과 인품 겸비… 우리가 찾는 영웅 '시라노' [김덕희의 온스테이지]

역량과 인품 겸비… 우리가 찾는 영웅 '시라노' [김덕희의 온스테이지]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꽤 길었던 설 연휴 덕에 요즘 인기가 많다는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호기심에 열어 보았다가 몰입도 높고 빠른 전개에 빠져 단숨에 끝까지 시청했다. 스토리 설정과 박진감 넘치는 사건들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중증외상의사 백강혁이라는 인물이 매력적이었다. 신의 경지에 다다른 의술뿐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예측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문제를 당당하게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이 시대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설 연휴가 지난 후에 뮤지컬 '시라노'를 관람했다. 이 공연은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며 모든 것을 갖췄지만 '언제나 자신보다 15분 먼저 도착하는' 큰 코를 가진 인물 '시라노'에 대한 이야기다. 시라노는 외적인 결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칼싸움에 능한 훌륭한 군인이자 멋진 시를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이었다. 무엇보다 평생 사랑했던 록산을 위해 록산이 사랑하는 크리스티앙과 연결해 주고 보호하며 평생 그 사랑을 간직해온 순정과 낭만이 넘치는 영웅적 인물이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백강혁과 뮤지컬 '시라노'의 시라노는 묘한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두 작품 모두 실존 인물을 모티프 혹은 모델로 쓰인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백강혁은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천재 의사다. 시라노는 코라는 결함을 빼면 검술과 시, 권력에 대한 저항, 국가에 대한 충성, 사랑하는 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에 유머와 위트까지 겸비한 캐릭터다.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지만 때로는 환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런 인물이 존재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염원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사실 현실은 너무 비루하고 참담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신념의 승리나 낭만적 세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예술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펼쳐낸다. 이를 통해 꿈을 꾸기도 하고 현실의 비참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주인공의 매력 외에도 '시라노'는 즐길 거리가 많은 뮤지컬이다.
초반 코미디로 흥겹게 전개되다가, 중간부터 영웅 서사로 묵직하게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로 이어진다. 3연을 통해 보완된 드라마, 캐릭터 설정 그리고 추가된 넘버를 통해 드라마와 코미디와 쇼의 밸런스를 안정적으로 완성시켰다. 완성도를 높여가는 프로덕션의 부단한 노력에 조용히 박수 쳐주고 싶은 마음이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