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신작 '미키 17' 28일 개봉
우주개척에 투입된 복제인간 미키
봉 감독 "빈곤한 노동 계층 대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 언급
남녀 간 사랑 다룬건 이번이 처음
"독재자 마셜, 각국 정치악몽 투사"
'미키 17' 봉준호 감독과 출연진들이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봉준호 감독, 배우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스티븐 연. 뉴스1
자본주의 병폐와 계층 문제를 꾸준히 풍자해온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는 '흙수저' 청년과 함께 돌아왔다. 워너브라더스가 투자·배급한 '미키 17(사진)'은 봉 감독의 8번째 장편영화이자 '기생충'(2019) 이후 6년만의 신작이다. 봉 감독은 19~20일 한국 언론과 만나 신작 제목에 빗대 "'기생충'이 봉7이라면 '미키 17'은 봉8"이라며 "주인공 미키는 마치 구멍난 양말을 신고 있을 것 같은 캐릭터로 주변에서 흔히 볼법한 착하고 측은한 친구다. SF장르지만 인간 드라마라서 우리끼리 발냄새 나는 SF영화라 불렀다"고 말했다.
■흙수저 청춘 현실 대변하는 미키
오는 28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2054년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된 한 복제인간 이야기다. 죽으면 다시 생체 프린팅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옥자' '미나리' 등을 제작한 플랜B의 러브콜을 받은 봉 감독은 "14쪽짜리 요약본을 읽고 완전히 매혹됐다"며 "사람이 죽었다가 프린터 같은 기계에서 다시 재생된다는 콘셉트가 특히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원작의 역사학자를 마카롱 가게를 창업했다 망한 청년으로 바꿨다. 그는 "미키는 빈곤이라는 상황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노동자 계층을 대변한다"며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죽은 청년이나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고 당한 청년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초반부 미키를 둘러싼 주변 환경과 그의 고통에 무심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사회 현실과 겹쳐진다. 특히 계속 살아나는 미키는 늘 대기 중인 대체 인력과 다르지 않다. 앞서 '빅쇼트'의 애덤 매케이 감독은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 지옥도 무대를 완벽하게 그린 우화"라고 호평했다.
■미키의 연인·젊은 지도자 상징하는 나샤
'미키 17'은 미키가 기존의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전작 '기생충'과 달리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봉 감독 특유의 개성과 유머 감각이 살아있으며, 처음으로 남녀간 사랑을 다룬 게 특징이다. 봉 감독은 "원작에서 나샤가 미키를 지켜주는 대목을 읽고 '아, 이게 핵심이구나' 싶더라"며 "읽다가 눈물지은 대목"이라고 회상했다.
미키의 정체성 혼란을 깊게 다룬 원작과 달리 영화는 이보다 다른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그 중심에 나샤가 있다. 나샤는 원정대를 이끄는 정치인 출신 독재자 먀셜 부부와 대척점에 있는 상징적 캐릭터다. 이기적인 그들과 달리 사회 밑바닥 계층을 포용하고, 이 영화의 스펙터클을 책임지는 외계생명체를 존중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갖췄다.
그는 마셜을 향해 "누구한테 외계인이래, 우리가 외계인인데"라는 대사로 인간 혹은 기득권 중심의 사고방식에 경종도 울린다. 봉 감독에 따르면 영국에선 이 장면에서 박수가 터졌다.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마셜은 국내에선 '헐크'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가 연기했다. 그의 첫 악역 연기다.
봉 감독은 "나라별로 각자 역사 속 정치적 악몽을 이 캐릭터에 투사했다"며 "누구는 이탈리아 무솔리니를, 누구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부부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뭐든 아내 일파(토니 콜렛)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마셜 캐릭터에 대한 국내 관객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봉 감독은 "독재자가 커플로 나올 때 더 무섭고 블랙코미디가 강해질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또 극중 마셜이 저격당하는 장면을 두고 지난해 7월 발생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에서 착안, 재촬영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 밝혔다.
■세대교체, 젊은 세대를 향한 응원가
'세대 교체, 젊은 세대에 대한 응원이 느껴진다'는 질문에는 "원정대 세대를 의도적으로 젊게 구성했다"며 "극중 스티브 박과 외계 생명체인 마마 크리퍼만 좋은 부모 세대다. 마셜 부부는 최악이다. 폭탄 터지는 상황까지 만들지 말고 곱게 늙고, 곱게 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키 17'은 순수 제작비 1700억원으로 봉 감독 역대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다. 간혹 뛰어난 작가주의 감독이 할리우드 시스템에 들어가 자신만의 영화적 개성을 잃은 경우가 있는데 '미키 17'은 그렇지 않다. 봉 감독의 인장이 생생히 살아있다. 최종 편집 권한을 중시하는 봉 감독은 "계약서에서 '디렉터스 파이널컷'만 확인한다"고 말했다.
"사회학이나 인문학적 통찰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내 영화는 거대담론이 아닌,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감정을 나눠보자는 것이다. 지인들이 영화를 보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기뻤다. 내 아들과 비슷한 나이인 미키가 이런저런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게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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