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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커피 사랑 140년… 숭늉처럼 익숙한 탄 맛에 끌린다 [내책 톺아보기]

진용선 커피 아키비스트가 전하는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

한국의 커피 사랑 140년… 숭늉처럼 익숙한 탄 맛에 끌린다 [내책 톺아보기]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 진용선 / 틈새책방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이디오피아의집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황실 커피 생두를 외교 행낭으로 보내 줘 한국 최초의 원두커피 전문점을 열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녁 무렵 들어간 카페가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처음 커피를 맛본 곳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그 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또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와 함께해 온 지 140년에 이르는 커피의 역사를 찾아 궤를 맞췄고, 북 적이던 탄광촌 고향 다방을 오가던 사람들과 커피 이야기를 바탕으로 '박물관에서 커피 한잔'이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커피 관련 자료를 분류해 메타데이터를 기술하면서 한국인이 즐기는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이 조화롭게 얽혀 있는 천변만화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커피를 두고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마시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는 '알고 마시는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맛의 커피는 언제나 친밀감의 표시였다. 한국 전쟁 시기 피란지 부산에서 달걀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가 생겨나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침밥 먹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 다방에 몰려들면서 생겨난 독특한 '아점' 메뉴였다. 휴전 후 가난했던 시절, "커피나 한잔할까요?"는 누구나 스스럼없이 하는 인사말이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커피도 한잔하며 얘기를 나누자는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정을 나누는 데 커피는 더없이 좋은 매개체였다.

1960년대를 지나며 전기밥솥이 가마솥을 대신하면서 누룽지가 점점 사라졌다. 밥을 먹고 입가심으로 마시던 숭늉이 사라질 무렵 커피가 일상이 되는 세상이 됐다. 믹스커피가 나오고 커피 자판기가 대세가 되면서 입가심으로 마시던 숭늉 후식이 자연스레 커피로 넘어갔다.

숭늉 맛이나 커피 맛이나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898년 유길준이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서양 사람들이 차와 커피를 우리네 숭늉 마시듯 한다"고 했는데, 60여 년이 지나 커피를 숭늉 마시듯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한국인은 밥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전국의 카페 수가 10만 개를 돌파했으며, 우리만의 독특한 커피 문화를 만들어 낸 커피 공화국이 됐다.

책의 제목처럼 커피는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가 됐다. 19세기 후반 천주교 신부와 선교사, 외교관, 상인을 통해 한국에 처음 들어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미군정과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일상이 됐고 역사의 일 부가 된 커피. 이제는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다독이고, 미래를 잇는 커피를 친구 삼아 또 다른 역사의 일부를 함께 써내려 가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고종의 커피와 일제 강점기 이후 문인들의 커피에서부터 인스턴트커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140년 커피의 사회사를 담으려고 했다.

온통 커피 이야기뿐인 책을 읽다 보면 커피 한잔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이 책이 역사가 깃든 커피를 음미하며 잔향과 '감칠맛', '매끄러운 여운'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