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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바바라 와인과 미쉐린 2스타 정식당 [이환주의 와인조이]

산타 바바라 와인과 미쉐린 2스타 정식당 [이환주의 와인조이]
산타 바바라 와인 생산자 연합의 와인 테이스팅 이벤트가 열린 서울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정식당의 핑거 푸드들. 사진=이환주 기자

산타 바바라 와인과 미쉐린 2스타 정식당 [이환주의 와인조이]
김민준 정식당 소믈리에가 와인과 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산타 바바라 와인과 미쉐린 2스타 정식당 [이환주의 와인조이]
캘리포니아 산타 바라 와이너리의 출품 와인. 사진=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최근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저자인 가와우치 아리오씨는 우연한 계기로 전맹(빛과 어둠을 느끼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인 시라토리 겐지씨와 미술관에서 작품을 함께 감상한다. 시각 장애인이 미술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흡사 '목소리가 없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 '발이 없는 무용가가 추는 발레' 같이 성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들은 어쨌든 여러 미술관을 돌며 다양한 작품을 감상한다.

전맹인 시라토리 겐지씨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작품을 감상한다. 더 정확히는 타인이 눈을 통해 본 것을 이어 말로 전달하는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이해한다. 책을 읽는 내내 '단 한번도 세상의 빛과 형태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듬성 듬성 비어 있는 타인의 언어를 통해 미술품을 시각화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단어의 뜻을 이해했다 해도 그것을 다시 뇌속에서 시각화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감각으로는 절대로 경험해 보거나 감각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극소 세계를 말로써 설명을 듣고 '양자얽힘'이나 '양자중첩'과 같은 미지의 현상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멀쩡한 책속의 인물들은 전맹인 시라토리 겐지씨에게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들이 사실 '보고 있지만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미 여러차례 봤던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실제로는 있지 않은 형태와 색이 있다고 착각하거나, 자세히 보지 않고 뇌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봤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다. 작가를 포함한 책 속의 인물들은 전맹인 친구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진짜 작품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라토리 씨는 책 속에서 "사진처럼 정확한 묘사보다는 보는 사람마다 서로 다르고,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고, 눈이 있는 사람들이 당황하는 상황 자체를 더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와인의 안내자, 소믈리에

미술 작품으로 치면 와인은 개념미술이나 추상미술에 가까운 듯 싶다. 행위만 놓고 보면 단순하게 눈으로 보는 것, 입으로 먹는 것에 불과하지만 행위 이후 감상과 이해(음미)라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미술을 감상할 때는 도슨트의 도움을 받고, 와인에 입문할 때는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다.

다만, 우리가 하는 큰 착각은 나와 다른 사람이 '동일한 행동을 하면 동일하게 느낀다'라는 전제다. 다시 말해 사람마다 모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정도로 맛을 느낀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소금이 0.1%만 들어가도 짜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크래미'를 먹고 대게와 맛이 똑같다고 느끼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 두 음식은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믈리에의 설명과 가이드가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일 필요는 없다. 그(소믈리에)와 나의 혀는 맛과 냄새, 자극에 대해 전혀 다른 감각적 민감도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와인과 미쉐린 식당

지난 2월 28일 산타 바바라 와인 생산자 연합의 테이스팅 이벤트가 청담 '정식당'에서 열렸다.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모던 한식 파인 다이닝 정식당은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이다. 직접 가볼 형편은 못 돼서 유튜브를 통해 정식당의 시그니처 요리인 꼬마 김밥은 여러번 봤었다. 이날은 정식당의 핑거 푸드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지역에서 온 와인 생산자 10곳, 총 20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와인협회(CWI)는 매년 캘리포니아 와인 지역의 '테마 와인 산지'를 지정하고 관련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올해는 산타 바바라 지역이 그 주인공이었다.

7개의 미국정부공인 포도재배지역(AVAs)을 보유한 산타 바바라 카운티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는 와인 산지다. 차가운 알래스카 해류의 영향이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서늘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만들어낸다. 수백만 년 전 북미대륙판과 태평양판이 충돌하며 형성된 곳으로, 산맥이 90도로 휘어 해안과 수직으로 만나는 횡단 계곡 지형을 가졌다. 이 독특한 지형 조건은 극단적인 일교차와 다양성 넘치는 중기후를 만들어낸다. 이 다양성 덕분에 무려 70여 종이 넘는 포도 품종을 길러내고 있다.

특히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는 전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시라와 그르나슈와 같은 론 품종도 산타 바바라 전역에 걸쳐 생산되며, 카베르네 소비뇽과 소비뇽 블랑 등의 보르도 품종 역시 전통적인 와인 산지와 견줄 수 있는 품질을 자랑한다.

이날 정식당의 김민준 헤드 소믈리에는 준비된 8종의 한식 카나페에 잘 어울리는 산타 바바라 와인을 직접 소개하며 테이스팅을 이끌었다. 행사에 참여한 와이너리는 △오 봉 클리마 △브루어 클리프턴 △크라운 포인트 △디어버그 & 스타 레인 △페스 파커 △라바지 △롱고리아 △마제럼 △네이티브 9 △프레스퀼 등이었다.

모두다 생전 처음 보는 와인이었기 때문에 빈티지가 가장 오래된 레드 와인, 최근 들어 맛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포도 품종인 피노누아, 와이너리를 소개할 때 제치있는 입담을 보여줬던 와이너리의 와인 등 몇가지 기준으로 테이스팅을 해봤다. 몇몇 와인은 개인적으로 맛있게 느껴졌지만 사람들마다 느끼는 맛의 민감도와 호불호가 상이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했다.

심지어 같은 화이트 와인이라도 시원한 첫 잔을 마셨을 때는 이날 먹은 와인 중 최고로 느껴졌다가도, 30분쯤 뒤에 먹으니 전혀 다른 와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물며 한 사람의 혀도 이렇게 느끼는 게 다를진데, 다른 사람의 혀와 나의 혀가 느끼는 감각은 말해 무엇하랴.

산타 바바라 와인과 미쉐린 2스타 정식당 [이환주의 와인조이]
산타 바바라 와인 생산자들과 김민준 소믈리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와인협회 제공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