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나무를 찾아서
우리나라엔 적송·홍송·청송 많아
조선시대 진경산수에 자주 등장
목재가치 높아 국가적으로 보호
초의선사가 그린 '다산초당도'(1812년).
방풍 및 방사 기능을 하는 하동송림 이민부 교수 한국관광공사 제공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거의 모든 용도의 목재로 이용돼 왔으며, 땅 이름에도 흔하게 사용돼 오고 있다. 가히 소나무의 나라라 할 만하다. 소나무 지명은 일송, 이송, 삼송, 사송(沙松), 오송, 청송, 반송, 송정, 송도, 송천, 송악 등 전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대략 450개에 이른다. 소나무는 한반도 전역에서 자란다. 애국가에서처럼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국가를 지키고 있다. 대나무와 함께 지조의 상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진경산수에도 소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 한반도 남쪽에서부터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이 소나무를 고사시키면서 북으로 뻗친 바 있다. 길이 1㎜에 불과한 이 벌레들은 소나무 목질 부분의 수맥에 자리를 잡아 물 흐름에 의한 영양분의 전달을 막아 감염시켜 1년 정도 지나면 소나무가 고사한다. 당시 경남과 경북의 남부 일원에 번지자 강원까지도 긴장하고 방어에 만전을 기했다.
재선충이 침투한 소나무는 병이 심해진 뒤에야 발견되어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데, 병에 걸린 소나무는 훈증 처리하거나 태웠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린 소나무를 다른 지역에 옮겨 목재 등으로 사용할 때 그 지역의 살아있는 소나무에 재선충을 옮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남는다. 재선충 확산을 막는 방안은 소나무를 함부로 이동시키지 말 것과 고사목, 잎마름 등 비정상으로 보이는 소나무를 발견하면 반드시 산림청 등 관공서에 신고하는 것이다. 재선충은 1905년 무역선을 따라 서방에서 일본으로 유입되고, 1988년 부산의 한 동물병원에 일본원숭이가 들어오면서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림 구조 연구보고에 따르면 약 6000년 전에는 참나무류가 번성했고 그 뒤 소나무류가 나타나 참나무속, 버드나무속, 자작나무속과 함께 살아왔고 4500년 전까지 계속 소나무류가 증가하다가 1400년 전까지 다소 감소한다. 그 이후 다시 소나무속과 참나무속이 번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추정한다.
조선 후기 어류조사서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1758~1816)은 전남 신안군 유배지에서 1804년 소나무숲 보존을 위한 저술 '송정사의(松政私議)'를 남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산지는 국토 전체가 10이라면 6~7에 이른다. 산에는 소나무 자라기가 알맞지만 소나무가 귀하여 재목 얻기가 힘들다. 대략 3가지 요인이 있는 바, 식목을 잘 하지 않고, 자연산은 땔감으로 잘리고, 화전민이 농지를 위해 불태우기 때문이다. 왜적이 침입하면 수백척 전함이 필요한데 어디서 소나무를 구할 것인가. 백성들에게 금송(禁松)과 봉산(封山) 정책 등으로 벌채를 못하게만 할 게 아니라 마을 단위로 인접한 산에 소나무숲을 조성하도록 하고 숲이 울창해지면 마을 주민들에게 세금을 면제해주는 방법도 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둘째형 정약전의 '송정사의'를 인용해 송림 보존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한반도는 원래 참나무류를 중심으로 낙엽활엽수림이 우세했으나 인위적 요인으로 소나무숲이 늘어났다. 경작지의 지력유지 퇴비 재료와 온돌 난방을 위한 활엽수 채취 등으로 숲의 구조를 참나무류와 소나무속이 섞인 혼효림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소나무는 지구상의 북방림인 침엽수이면서도 남방으로 그 분포를 넓힌 종이다. 남방림 활엽수로 북방으로 면적을 넓힌 자작나무와 대조된다. 농사가 중심이 된 선조들의 생계 공간적 범위는 크지 않았다. 추정하면 삼국시대에 걸쳐 통일신라시대로 내려오면서 농경지 면적이 증가하면서 활엽수림을 제거하고 경작지와 주거지 인근을 중심으로 소나무숲이 늘어난 것이다. 목재로서의 가치도 높아 국가 정책으로도 소나무를 살핀 것이다. 국가적으로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도 많았다. 여러 가지 송금(松禁) 정책으로 잘 자란 소나무숲 벌채를 막는 것이었다.
소나무숲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소나무는 햇볕을 많이 요구하는 양수(陽樹)이다. 그래서 촘촘히 자라는 소나무 아랫부분의 가지는 말라 죽고 밋밋한 모양으로 높이 자라게 된다. 소나무는 건조한 곳에서도 생육이 잘되는 양수의 특성을 보유하면서 조림기술이 없던 시기에도 화강암 같은 지역과 인간의 관심으로 마을에 인근한 지역에서 잘 자라났다. 마을 입구를 보호하는 마을숲이나 상징물로서의 노거수에도 반송(盤松) 같은 소나무가 많이 선택됐다.
한반도의 암석은 편마암, 퇴적암과 함께 화강암도 대표적인 암석이다. 특히 화강암은 깊은 땅속에서 심층풍화가 되면 침식에 약하면서 하곡이 발달하고 미립질 풍화침식물들은 하천변에 범람원을 만들어준다. 미호평야, 춘천분지, 충주분지 등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곳의 구릉에는 거주지가 많이 형성되고 소나무숲이 가꾸어진다.
소나뭇과에 속하는 식물은 아열대에서 아한대에 이르기까지 북반구에서 널리 분포하고, 종의 수는 100여종에 달한다. 그중에서 적송(赤松), 홍송(紅松) 혹은 육송(陸松)으로 불리는 소나무는 거의 한국과 일본에만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춘양목(春陽木)을 중심으로 한 청송과 봉화 지역, 그리고 안면도에서 질이 좋은, 즉 곧고 굵게 잘 자란 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 해안지역에서는 '곰솔'이라고도 하는 흑송(黑松), 혹은 해송(海松)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자라면서 방풍림 역할을 잘하고 있다. 해송은 바람에 적응하면서 틀어지기도 한다. 2003년에 태풍 매미가 남해안을 강타했을 때도 경남 남해군 물건리의 어부림(漁夫林)은 방풍림 덕택에 마을을 잘 보존했다. 더하여 어부림은 물고기가 쉴 수 있는 그늘까지 만들어 어족 보호에도 기여한다. 하동 섬진강 송림도 방풍림, 방사림 기능을 하면서도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준다.
소나무숲은 생리 특성상 하층식생이 빈약해서 벌레가 적고 뱀도 잘 살지 않으며, 은신처가 없기 때문에 호랑이도 기피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소나무숲은 송이버섯을 제공했다.
이러한 점들이 촌락이나 묘소 주변에 소나무숲을 형성하게 하는 이유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의 소나무에 대한 친근감은 마을과 함께하는 편안한 경관을 형성하고 목재 공급 등의 결과로 볼 때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기후 변화에 따라 소나무 군락이 점차 북상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잘 보존할 가치가 있는 나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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