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미지정 가입자 비율 전체 40% 이상
수익성 없는 현금성 자산에 방치되고 있다는 뜻
지정 하려고 해도 포트폴리오 매력적이지 않아
은행·증권사 등 사업자별 포트폴리오 최대 10개
상품 다양하지 않아 선택권 제한...지정 이끌 동기 약해
뉴스1 제공.
[파이낸셜뉴스] 도입 3년차를 맞은 국내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0명 중 4명은 디폴트옵션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지정한 가입자 상당수는 초저위험에 몰려 '노는 퇴직연금'을 줄이자는 제도 취지가 무색한 모습이다. 금융투자상품이 자동 지정되는 '디폴트옵션(기본값)' 제도가 아니라 지정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열어둬 퇴직자산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결과다. 가입자가 지정에 나서려고 해도 사업자별로 포트폴리오가 10개로 제한되고, 그마저 매력적인 선택지가 제한적인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미지정률 40%대 초반
13일 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근로 1년 이상 실제 가입자 수 기준으로 디폴트옵션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지정 규모는 각각 334만명, 297만명이다. 다만, 국가통계포털(KOSIS)의 최신 수치인 2023년말 디폴트옵션 DC형과 IRP의 계좌수 기준 전체가입자는 각각 384만명, 321만명이다. 비율로 따지면 각각 87.0%, 92.5% 수준이다. 다만, 2024년 말 기준으론 가입자가 더 늘어난데다 사업자별 중복이 적지않아 디폴트옵션 지정 비율은 모두 50% 후반대라는 게 고용부와 금융투자업계 추정이다. 반대로 전체 가입가 중 40% 이상은 현금성 자산 등에 들어가 있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사전지정운용제도가 퇴직연금을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으로 굴리도록 연결해주는 방식이 아니고 지정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는 가입자가 운용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옵트아웃'을 결정하지 않는 이상 적립금을 특정 상품에 배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국내의 경우 지정 선택권을 준다"며 "이런 환경에서 당초 투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가입자층이 얼마나 움직일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본인 퇴직연금 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미리 정해둔 방법으로 적립금을 자동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 2022년 7월 처음 도입돼 1년 유예기간을 거친 후 그 이듬해 7월 12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각 회사에 퇴직금 운용을 맡기는 확정급여(DB)형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디폴트옵션 "고를 게 없다"
디폴트옵션을 지정해도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제도상 각 사업자는 최대 10개까지만 포트폴리오를 운영할 수 있고, 이 중 은행 예금으로 구성된 저위험 유형을 제외하면 투자 목적으로 고를 수 있는 대상은 4~6개에 불과하다.
더구나 몇 안 되는 중위험, 고위험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2~3개 TDF, 타깃리스크펀드(TRF), 밸런스드펀드(BF) 등을 조합해 꾸려져 있다. 성과가 입증되지 않은 신규 펀드들은 편입되지 못하고 기존 상품들도 리스크 검증 등을 통과해야 하는 등 진입이 까다로워 다양성이 제한된다.
물론 디폴트옵션은 연금자산을 방치하는 가입자들을 신속하게 운용의 영역으로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포트폴리오를 과도하게 깔아둘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조차도 이끌지 못할 정도로 실속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저위험에 가입자 85% 이상이 쏠려 있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고용부 관계자는 "연금 상품이다 보니 면밀히 검증할 수밖에 없다"며 "주기적으로 성과를 공시해 사업자들이 수익률을 신경 쓰도록 하고, 상품 변경 신청도 수시로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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