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무관세 수입 확대
미국·호주産과 생존 경쟁
한우 품질 차별화가 살길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온순하고 큰 눈망울에 황갈색 털을 갖고 있는 한우는 100대 민족문화 상징에 선정될 만큼 우리 민족의 삶과 관계가 깊다. 지금은 한우 사육을 전업으로 하는 농가가 많아 적게는 수십마리에서 많게는 1000~2000마리까지 규모화가 이뤄졌지만 1980년대만 해도 농가당 한두마리에 불과했다. 대부분 농가에서 집안에 외양간을 만들어 애지중지 키운 재산목록 1호였다. 그랬기에 기르던 어미소가 송아지라도 낳게 되면 당시에는 그야말로 집안 최고의 경사였다.
필자도 어렸을 때 부모님을 도와 어설프지만 작두로 썬 볏짚에 콩깍지와 쌀겨 등을 섞어 여물거리를 만들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밥 짓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소죽을 끓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외양간 구유에 부어 줄 때면 소는 긴 혀를 날름거리면서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여물을 먹는 모습이 너무도 대견하여 목덜미를 긁어 주곤 하였다.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소를 한 마리씩 끌고 풀밭으로 가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판을 뛰어다니곤 했었다. 행복한 소년 시절의 추억이 소와 함께 선명하다.
한반도에서 소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일소(役牛)로 사육되었다. 도축을 엄격히 제한하고 워낙 귀했던 탓에 일반 백성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고기를 맛볼 수 없었다. 조선시대 왕들은 매년 봄 동대문 밖 선농단에 친히 나가서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대제를 지냈다. 제례에 바친 소로 참석한 백성들에게 선농탕이라는 귀한 소고기국을 끓여 나눠준 것이 오늘날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다는데 그만큼 소고기가 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계화가 되어 일소가 필요치 않으나 1980년대까지 수천년 동안 경운을 비롯한 농사일과 우마차를 끄는 데 있어 소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1970년대부터는 고기소(肉用牛) 개량을 본격화하였는데 최근에는 유전체 해독으로 송아지일 때 미리 유전능력을 예측하여 우수한 형질의 씨수소를 선발하고 있다. 정부 위탁으로 농협 한우개량사업소에서 연간 우수 한우 수백마리를 선발하고 최종적으로 한우보증씨수소 40마리를 엄선, 인공수정용 정액을 채취하는데 이 40마리가 연간 100만마리씩 생산되는 전국 한우 송아지들의 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미국, 호주를 비롯한 축산 선진국과의 연이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수입 개방으로 국내 시장에서 한우 비중이 3분의 1까지 감소하였음에도 품질 고급화를 위한 농가의 자구노력과 정부의 다양한 정책적 지원, 육류 소비 확대로 한우산업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한우 성체 평균은 1990년 444㎏에서 2023년 788㎏으로 배 가까이 커졌고, 우수 개체는 1t을 훨씬 넘기는 경우도 많다. 1등급 이상이 75%로 품질도 고급화되었는데 2024년 출하된 거세우 중 최고가는 9300만원으로 고급 승용차와 맞먹는 값을 받기도 하였다.
소 사육 규모는 2023년에 350만마리로 1990년 162만마리에서 2.2배로 증가했다.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도 같은 기간 4㎏에서 15㎏으로 3.6배로 늘었고 한우 생산액은 연간 6조~7조원에 달하여 농촌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한우는 유전적으로 우수하고 사육기술도 뛰어나 고소한 풍미와 감칠맛이 일품이다. 세계적 인플루언서들도 한우를 세계 최고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와규도 한우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년부터 미국산을 시작으로 소고기 무관세 수입이 확대되면 경쟁이 한층 심화될 것이다.
미국과 호주는 광활한 목장에서 방목하는 데 비해 땅이 좁은 우리는 집약적 사육으로 인건비와 사료비에서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구이문화로 소비자가 지방이 골고루 있는 마블링 고기를 선호하는데, 이를 생산하려면 외국보다 훨씬 긴 30개월 이상 장기사육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우산업을 지키는 확실한 길은 품질 차별화와 함께 여러 난제에도 불구하고 한류 확산과 연계하여 해외 고급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정황근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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