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파이낸셜뉴스] 필자는 2016. 2.부터 1년간 그리고 2019. 3.부터 2022. 2.까지 3년간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전국에 배치된 3,000명이 넘는 판사 중에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하는 판사는 20명 내외였다. 형사재판 등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판사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소년심판 업무만 전담했던 판사들만 추려보면 그 수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더라도 보통 1년 아니면 2년 정도 담당하다가 다른 업무를 맡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4년간의 재판 경험을 가진 필자의 경우 소년심판 업무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하여 변호사가 된 현재도 다양한 소년 사건 또는 학폭 사건을 수임하여 처리하고 있다. 일부 변호사들이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소년심판에서 가벼운 처분을 받는 방법’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긴하나 필자가 보기엔 수박 겉핧기 식의 내용들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학부모들이 그런 광고성 콘텐츠에 현혹될까봐 걱정된다. 소년심판은 형사재판 보다도 직권주의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소년부 판사가 조사절자, 심리절차 및 집행절차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보조인으로 몇 차례 소년심판을 보조한 경험만으로는 소년심판에서 각 절차와 최총 처분이 가지는 의미를 깊이 있게 파악하기 어렵다. 필자도 소년부 판사 2년 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각 기관의 역할, 처분의 효과 및 절차가 가지는 의미 등을 알게 되었다.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 어설프게 알면서 그런 지식을 파는 사람들이다.
필자가 10년 정도 일선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하다가 처음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을 때 놀랐던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반 재판 업무를 하면서는 현장 검증을 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외부 출장이 없었는데 소년부 판사가 되니 부임 초기 6개월 간 1주일에 하루씩 외부 출장이 있었다. 왜냐하면 조사기관이나 처분을 집행하는 기관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소년부 판사사 제대로 조사를 명할 수 있고 적절한 처분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비행예방센터, 각종 6호 시설, 수강명령 및 사회봉사 집행기관 등 대략 40곳이 넘는 기관을 방문하였다. 소년원 등은 1년에 한번 정도 방문하였지만 6호 시설 등은 집행감독 차원에서 6개월에 한번씩 방문하였으니 사실 1년 내내 일주일에 하루는 외부 기관 방문 일정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소년심판 업무를 맡기 전 10년 동안 해왔던 판사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다이내믹한 업무가 당시엔 꽤나 생소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늘 꽉 짜여진 틀속에서 햇빛도 보지 못한채 1주일 내내 기록 속에 파묻혀 생활했던 기존 생활과 달리 동료 소년부 판사 그리고 조사관과 함께 소년들이 조사받거나 수용되어 있는 기관들을 방문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지방 토속 음식점도 탐방하는 등 좋은 점이 많았던 것 같다.
또 하나 놀랐던 것이 청소년 참여법정 제도였다. 관내 여러 학교 학생들 중에 모범생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선정하여 그들로 구성된 참여인단이 경미한 비행을 저지른 비행소년의 심리에 참석하여 소년부 판사에게 적합한 부과과제를 건의하는 일종의 참여재판 제도였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참여인단의 스펙쌓기에는 좋은 제도였지만 뭔가 금수저 학생이 흙수저 학생을 망신주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한 형태의 심리를 받는 과정에서 비행소년이나 그 보호자의 프라이버시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제도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는 다른 소년부 판사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현재는 거의 사문화된 제도가 되었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마지막으로 가장 놀라웠던 제도는 보호소년들을 위한 청소년 문화제였다. 서울가정법원, 수원가정법원, 인천가정법원, 춘천지방법원 등은 해마다 돌아가면서 아동복지시설에 위탁된 보호소년들을 대상으로 청소년문화제를 개최하였다. 이 문화제는 보호소년들로 하여금 문화제를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전의식, 열정 및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마련되었다. 왜냐하면 아동복지시설에 위탁된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정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아 본 적이 없어 대부분 자존감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수원가정법원에서 주최한 제8회 청소년문화제는 원래 2019년에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상 2020년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도 여러 제약을 받는 상황이었다. 청소년 문화제를 준비하기 시작하던 시기인 2020. 5.경에는 이 행사가 열리게 될 2020. 11.의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도 6개월 뒤에는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오프라인 행사를 전제하고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까지 대관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당초 예상과 달리 쉽게 잡히지 않았고 2020. 7.경에 이르러서는 과연 이 행사가 가능할지, 가능하다 해도 과연 실행하는 것이 적절할지 등에 관한 많은 고민이 생겼다. 이번 기회에 청소년 문화제를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반대로 청소년 문화제가 6호 시설에 입소한 아이들이 큰 무대를 경험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행사이니 예년처럼 강행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코로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진행 가능한 온라인 방식의 행사를 제안했다. 당시 제안한 방식은 모든 6호 시설에 카메라가 투입되는 다원생중계 방식이었는데, 이런 방식의 온라인 행사를 처음 제안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실행이 불가능하거나, 설령 실행되더라도 매우 조잡한 방식으로 진행되거나, 아니면 행사를 준비하다가 업체와의 갈등으로 무의미하게 종결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녹화 방송 형식으로 진행하자는 등 여러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다원생중계 방식의 온라인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던 박종택 전 수원가정법원장님 덕분에 우리 기획 의도에 맞게 행사를 준비해 줄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업체 선정도 쉽지 않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업체를 선정한 뒤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거의 매주 실무단 회의를 진행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여러 난관들에 부딪쳐 좌절하기도 했었지만 최선의 옵션을 준비할 수 없다면 차선책을 택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그 결과 당시 행사를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 문화제가 끝난 후 오프라인 행사보다 훨씬 재미있고 좋았다(나아가 행사장에서의 비행소년의 이탈 문제 등에 신경 쓰지 않아서 좋았다)는 의견을 내주어 많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 살레시오에 입소했던 아이들이 라디의 “엄마”라는 노래를 불러 다른 시설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문화제에 참여한 판사들, 조사관들 등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였다. 60여 명의 아이들의 목소리도 제각각, 음정도 제각각이었지만 노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엄마’라는 단어를 목 놓아 외치는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특히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대부분이 엄마를 알지 못하거나 현재 엄마와 떨어져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고 있기에 나는 그 아이들의 목청에 더 큰 울림을 느꼈다. 필자도 그 경연을 본 후 참았던 눈물을 몰래 훔친 뒤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변호사가 된 이후 직접 가수 ‘라디’를 만나 이 날의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요즘같이 화창한 봄날이면 문득문득 소년부 판사 시절이 생각난다. 2019년 당시 소년1단독 판사님이셨던 존경하는 윤웅기 부장판사님과 소년2단독 판사였던 필자는 법원 승합차를 타고 전국을 누비고 다녔는데 첫 기관 방문 때의 날씨가 지금과 비슷했다. 두 판사가 경기 남부 전체의 소년 사건을 처리하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가 법관 인생 중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보람찬 순간이었다.
가끔 법원 판사님들과 모임이 있을 때마다 소년심판 업무 환경이 점점 더 열악해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특히 집행기관과의 공조가 잘 안되고 6호 아동복지시설의 수용 인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아동복지시설에 위탁해야 될 아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처분에 애로 사항이 많다고 한다. 늘어나는 업무량과 점점 각박해지는 각 기관과의 관계 속에서도 묵묵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소년부 판사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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