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버블 망령
노무현정부 ‘버블세븐’ 17차례 대책 쏟아
결과는 집값 폭등… "오를 곳 찍어준 셈"
文정부 ‘노블세븐’과 전쟁도 실패로 끝나
강남3구·용산 ‘버블포’ 토허구역 묶었지만
서울 매매가 떨어질때 오히려 4곳만 상승
"버블전쟁 실패 반복은 사후약방문식 규제 탓
‘특정 집값 상승=죄악’ 낡은 프레임도 문제
수요지역 억누르는 게 아닌 공급 더 늘려야"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6년 5월. 당시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부동산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수많은 대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고육지책으로 꺼낸 카드이다. 지금도 유명한 '버블세븐'이라는 신조어가 이때 만들어졌다. 거품이 곧 꺼질 것이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버블세븐 집값은 말 그대로 폭등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현 정부가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4곳을 집중 타깃으로 한 집값과의 전쟁을 선언하자 '버블 망령'이 되살아 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버블세븐'이 문재인 정부 때에는 '노블세븐'으로 계승되더니 현 정부에서는 '버블포'로 부활했다는 것이다. 버블과의 전쟁은 실패로 끝났는데도 정책은 또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은 "버블을 잡기 위한 전쟁은 강남 집값만 더 올려놨고,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라며 "이제는 '버블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17차례 집값 대책...그리고 '버블세븐'
노 정부 때 등장한 버블세븐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와 목동·분당·평촌·용인 등 7곳을 말한다. 버블세븐 핵심은 이들 집값에 거품이 끼었고, 곧 꺼진다는 것이 골자다. 당시 노 정부는 임기 중 17차례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며 집값과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특히 2005년 8·31 대책과 2006년 3·30 대책은 무차별 폭격 수준이었다. 강남 등 버블세븐 지역이 주 타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정부 공식 통계인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아파트값 통계는 지난 2003년 11월부터 집계되고 있다. 이때부터 노 정부 임기 만료인 2008년 2월까지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는 46.36% 상승했다. 서초구도 55.82% 올랐고, 송파구도 46.21% 뛰었다. 목동이 위치한 양천구도 49.19% 급등했다.
분당·평촌·용인 아파트 시장도 다르지 않다. 안양 동안구(평촌)는 무려 63.57% 폭등했다. 용인시도 56.17% 상승했다. 분당도 45% 이상 아파트값이 상승했다. 노 정부 임기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42.99% 올랐고, 지방은 9.63% 뛰는 데 그쳤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버블세븐은 나중에 정부가 집값이 오를 곳을 찍어준 지역으로 변질됐다"라고 말했다.
■뒤이은 '노블세븐'...결과는 또 실패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이명박 정부 시절 하락했다가 박근혜 정부 때 다시 상승한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집값 버블과의 대대적인 전쟁에 나선다. 집권 기간 동안 20여 차례 이상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것이 한 예다. 대책 수 기준으로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많다.
문 정부 때 등장한 신조어가 '노블세븐'이다. 버블세븐의 확장판이다. 노블세븐은 기존 강남 3구에 강동·용산·마포구와 과천시가 새롭게 포함됐다. 이들 7곳을 포함한 수도권 대부분을 규제지역으로 묶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가용 가능한 모든 대책이 다 등장했다"라며 "집값 상승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와 정부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블세븐과의 전쟁도 결과적으로 실패로 마무리된다. 문 정부 기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25.79% 올라 지방(10.55%) 보다 2배 이상 뛰었다. 강남·송파·강동구는 30% 가량 올랐고, 과천시는 상승률이 40%에 육박했다.
지난 2019년에는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34평형)가 34억원에 거래되면 3.3㎡당 1억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노블세븐 전쟁이 3.3㎡당 1억원 시대를 앞당겼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2021년에는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신고가가 쏟아지면서 예전에 경험 못 했던 '폭등장'이 연출되기도 했다.
■'강남 3구와 용산구'...살아난 '버블포'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 현 정부도 이곳 만은 예외가 아니었다. 바로 강남 3구와 용산구이다. 지난 2003년 초 정부는 이들 4곳을 제외하고는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을 다 풀었다. 이들 4곳만 콕 집어 남겨 놓은 것이다.
최근에는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4곳의 아파트 전체를 아파트거래허가제나 다름없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으면서 '버블포'와의 전쟁을 공식화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적을 놓고 보면 실패다. 윤 정부 들어 올 2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5.09%이다. 지방은 무려 -12.27% 변동률을 기록했다. 반면 이 기간 서울 서초구 아파트값은 7.97% 상승했다. 강남과 송파구도 각각 3.69%, 4.38%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버블정책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버블과의 전쟁에서 실패해도 반복되는 이유는 문제가 터지고 나서 단기적으로 처방할 수 있는 방법이 규제 밖에 없으니 역대 정부들이 실패할 줄 알면서도 똑같은 정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집값이 오르면 큰 문제이고, 누구는 책임져야 한다'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수이든 진보이든 강남 등 특정 지역 집값이 오르는 것을 '죄악'시하는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며 "물가 오르는 것은 감수를 하는 데 집값이 상승하면 큰 문제이고, 투기 세력 때문이라는 낡은 관념에서 못 벗어나다 보니 버블전쟁, 그리고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버블과의 전쟁 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강남 등 정부가 찍어준 지역 아파트는 희소성만 더 커졌다.
지금이라도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90년대만 해도 강·남북 집값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2000년대 이후 버블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격차가 매우 크게 벌어졌다"라며 "강남을 잡을 게 아니라 공급은 계속 늘리고, 동시에 비 강남권과 수도권·지방의 인프라 확충에 더더욱 많은 노력과 재원을 써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이 교수는 "중장기적 처방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단기적 규제에 집중하다 보니 역대 정부에서 (중장기 처방이) 계속 소외되고 있다"라며 "핵심은 수요가 있는 지역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공급을 더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ljb@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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