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주 생활경제부 기자
계엄이 선포됐던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27분, 기자는 잠을 자고 있었다. 다음 날 한 치킨업체가 진행하는 지방공장 투어에 가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잠에서 깬 뒤 평소처럼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바나나를 하나 먹었다. 마을버스에 탔다. 이어폰을 끼고 카카오톡을 확인하는데 평소보다 열 배는 많은 카톡이 와 있었다. 너무도 현실적이지 않은 메시지와 짧은 영상들. 특히 헬기를 탄 군인이 국회의사당에 내리는 장면을 보면서 이게 정말 현실인가 하는 인지부조화가 생겼다. 그 와중에 포고령 3호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조항을 보자 '설마 이대로 실업자가 되는 건가'라는 걱정도 들었다. 자정이 넘어 예정됐던 공장 투어가 취소됐다는 메시지가 왔던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순환하는 마을버스에 그대로 탄 채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둑한 거리에서 허리가 휜 한 할머니가 리어카에 박스를 싣고 계셨다. 계엄이 터진 상황도 모르고 박스를 줍는 할머니가 짠해서 스마트폰으로 할머니의 사진을 몰래 찍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다행히 집에 도착해서 단체메시지 창을 끝까지 봤고, 그제야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새벽에 계엄령이 해제됐다는 걸 알게 됐다. 깊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룻밤의 짧은 해프닝으로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이뤄지기까지 약 4개월간 길고도 긴 혼란의 시기가 이어졌다. 정치적 이념과 가치의 차이는 전 세계 어디에나, 어느 시기에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계엄 사태 후 우리 사회의 분열 양상은 그 어느 때보다 극렬했다. 1등과 경쟁만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법조 엘리트와 정치 권력의 일그러진 폭주, 의자 뺏기 게임에서 후순위로 밀린 절대다수의 출구 없는 분노가 복잡하게 얽혔다. 전무후무한 '서부지법 폭동 사태' 배경에는 배금주의에 물든 유튜버,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언론도 한몫했다.
계엄과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시장에서 치킨을 파는 자영업자도 타격을 받았다.
고된 업무를 마치고 치킨에 맥주 한 잔을 하던 직장인들의 일상도 깨진 탓이리라. 일상이란 것은 늘 거기에 있어줬기 때문에 잃어버린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후 치킨집 사장님도, 평범한 직장인도 일상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점심을 먹고 여의도공원을 산책하는데 작년과 마찬가지로 하얀 벚꽃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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