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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민주주의와 언론의 미래

"언론 신뢰" 47國중 38위
공정성 기반한 진실 추구
고품격 저널리즘의 핵심

[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민주주의와 언론의 미래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탄핵심판 다음 날,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모든 절차가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충실한 보도를 해 준 언론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냈다. 계엄에서 탄핵에 이르는 초유의 정치적 혼란기를 지나면서 말도 많고 사건도 많았지만 이 정도로 봉합되는 데 언론의 기여가 있었다는, 다소 의례적인 메시지였다.

그런데 국민은 바로 그 언론을 믿지 않는다. 2024년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국민 3명 중 1명(31%)만이 언론을 신뢰하고 있는데, 이는 47개국 중 38위 수준이다. 신뢰할 수 없는 뉴스의 피로감으로 인해 독자는 언론을 피해 스스로를 고립의 계곡에 가둔다. 신문 구독을 끊고 거실의 TV를 없애기도 한다. 자신과 생각이 달라서 보기 싫은 뉴스와 철저하게 절연하는 선택적 뉴스 회피 방식을 택한다. 내가 보고 싶은 뉴스만 내가 알아서 볼 것이니, 언론은 감히 내 생각을 바꾸려 들지 말라고 한다.

신문과 방송이 아니어도 이들이 정보를 접할 곳은 많다.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3명 중 2명(66%)이 온라인 플랫폼이 전달하는 '숏츠'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다. 이러한 추이는 20~40대 연령층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언론이 과연 독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뉴욕타임스 성장 및 고객(Growth & Customer) 최고책임자인 한나 양이 지난주 방한해 고려대 미디어대학 강의실에서 학부생들과 나눈 대담이 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좋은 저널리즘이 곧 가장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는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서 다룬 저널리즘 신뢰 회복을 위한 처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지난 10년간 뉴욕타임스는 오히려 '고품격 저널리즘'을 위한 뉴스룸 예산과 인력 투자를 크게 늘렸다. 뉴스룸에 더 큰 자율성을 보장했다. 뉴스의 개념을 확장하고 재정의해 이를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독자 서비스와 연결하는 한편 뉴스룸과 비즈니스, 첨단 테크놀로지 부서의 장벽을 넘어 횡으로 연결해 긴밀히 협업하는 내부혁신도 단행했다. 이 혁신의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은 지고의 가치는 고품격 저널리즘이었다. 그 결과는 온라인 구독자 1200만명의 성과로 돌아왔다.

독자가 강한 자기 신념의 동굴에 머무르기를 고집하는 이 시대에 고품격 저널리즘의 조건은 공정성(fairness)을 기반으로 한 진실성(truth)의 부단한 추구다. 진부하게 들리지만 그 이상의 해법은 없다. 사안과 의견의 양면을 기계적으로 균형 있게 다루는 공정성의 문제는 진실 추구를 위한 필요조건이고 과정일 뿐이다. 그 자체가 충분조건이자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경직화된 공정성은 대립하는 의견의 기계적 병렬 제시로 인해 결과적으로 의견 극단화를 가속화하는 경향이 있다. 확고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더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하다고 논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진실성을 추구하는 고품격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고도로 복잡한 정치와 국가정책의 개별 사안들에 대한 진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언론사별로 다양한 것이 당연하고, 이는 적극 보장되어야 한다. 개별 언론이 사실에 대한 성찰의 결과로 진실에 가장 근접하는 보도를 하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 성장을 위한 의미 있는 기여다. 이로 인해 언론도 떠나간 고객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또한 언론은 되돌아온 고객에게 보은하기 위해 더욱 결연하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필자는 신념과 법리의 관계를 생각했다. 신념이 법리를 지배하는 법의 운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필자는 이 기간의 언론 보도를 보면서 내내 신념과 진실의 문제를 생각했다. 근거 없는 신념이 진실을 지배하는 언론은 설 땅을 잃는다. 독자들의 귀를 닫게 한 귀책사유가 있는 언론에 그들의 귀를 다시 열게 할 책무가 있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