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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지방시대와 지방의회

[fn광장] 지방시대와 지방의회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
다양성은 경쟁력을 창출하는 원천이다. 다름 사이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다름끼리 상호작용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방자치는 지역적 다양성을 촉진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양된 지역적 다양성은 국가 경쟁력을 견인한다. 이것이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이유이자 자치제도를 발전시켜야 하는 당위이기도 하다.

지방정부의 기관은 자치단체장(집행기관)과 지방의회(의결기관) 간 대립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어느 쪽이 지역적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데 더 적합한 구조일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단체장 한 명의 생각보다는 의원 다수의 생각이, 일사불란함을 지향하는 관료조직인 집행기관보다 다름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것들을 하나로 버무려 내는 의회가 더 낫지 않을까. 이렇게 본다면 지방의회의 역할은 지방자치의 본질적 기능과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자치제도는 지금껏 단체장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발전해 왔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지방정부로서는 자치 신장을 위해 어떻게든 중앙의 권한을 하나라도 더 가져와야 했다. 당연히 유지하려는 자(중앙)와 받으려는 자(지방) 간 권한배분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이 국면을 단체장이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권력의 다른 한 축인 지방의회의 역할은 자치단체장에 가려지게 되었고, 지방의원들은 자치무대에서 조연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이제는 자치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자치발전이 크게 진전된 지금, 지난날 중앙과 지방 간 대립구도는 지방과 지방 간 경쟁구도로 바뀌고 있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쌓아온 자치력을 토대로 각자의 지역적 다양성을 발휘해 나갈 때가 됐다. 지방의회의 시간이 온 것이다. 정부도 이러한 상황전환을 인식하고 지방의회의 역할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지난 '20년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의회 사무처 직원 인사권을 자치단체장에서 의회의장에게 돌려준 것이나 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해 줄 정책지원관을 인정해 준 것이 그것이다.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의회가 자치무대에서 주연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의원 개개인의 의정역량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들의 의정역량을 키워줄 교육시스템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현재 지방의원들에 대한 교육은 '국회의정연수원'과 '의정연수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 전자는 국회의원 교육기관이고, 후자는 지방공무원 교육기관인 지방인재개발원에 딸려 있다. 둘 다 셋방 교육인 셈이다. 셋방살이만큼 큰 설움도 없다고 하던데 이 설움을 누가 알아줄까. 지방의원은 공무원과는 역할이 전혀 다르고 국회의원과도 같은 선출직이지만 활동영역이 상이한데 같은 기관에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년이면 지방의회 개원 35년이 된다. 이제 지방의원에게도 그들이 주체가 되어 그들만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지방의정연수원'을 설치해 주면 어떨까. "교육내용만 좋으면 됐지 독자적인 연수원까지 필요한가"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내 것을 운영하는 것과 남의 것을 빌려 쓰는 것은 차이가 크다. 민간기업들이, 국가공무원이나 지방공무원들이 자신들만의 독자적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여태껏 지방의원 교육을 다른 기관에 의탁해 온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셋방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은 자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들었던 어느 도의원의 하소연이 마음에 맺힌다. "아직도 지방의원에 대한 자질 시비가 많은데 우리도 제대로 배우고 싶다. 우리들만의 배움터를 만들어 달라." 이 말을 듣자면 세간의 비판은 앞뒤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방의원에 대한 자질 논의는 제대로 된 교육기회를 준 다음에 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이재영 전 행정안전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