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판결로 작년 12월 3일 계엄사태 이후 혼돈에 빠졌던 국정은 정상을 회복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초 우려했던 헌재 판결 이후 민심의 극단적인 대립 양상도 진정됨으로써 국민의 성숙된 민주정치 의식을 증명해 보였다.
이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장래를 낙관할 수 있는 증거임이 분명하지만,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선 탄핵을 둘러싼 그동안의 극심한 국론 분열과 대립이 끝났다고 안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탄핵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의 상처는 6월 3일로 확정된 다음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재현될 우려가 크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와 같았던 계엄사태의 충격과 이후 4개월여의 혼돈의 악몽에서 벗어나 이제는 국민 모두가 평상심으로 돌아가 대한민국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적 양극화 심화를 비롯한 유권자의 불안과 불만은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정치적 부족주의 대립을 확산해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번 탄핵 재판을 계기로 극명하게 나타났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중들의 정치적 부족 대립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용되는 반면, 그 결과 국민들은 왜곡된 나쁜 정책으로 민생의 고통이 더해 갔다. 바로 현재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정부들의 업적을 평가해 보면,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공히 정권의 이념적 편향성으로 정책을 선택한 결과 정책 실패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 역대 정권들은 실패를 반복해 왔다. 대표적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성장의 낙수효과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했던 747정책은 실패했다. 또한 진보 이념의 문재인 정부는 시장기능을 무시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한 결과 집값 급등을 가져옴으로써 실패한 정부가 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념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시대과제 혹은 국가과제다. 지난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태어나지 않은 미래'(Korea's Unborn Future)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여 앞으로 60년 내로 한국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그 절반을 노인 인구가 차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독일에서 제작된 'South Korea is over'라는 제목의 유튜브는 유엔 인구전망 자료를 인용, 206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는 반면 25세 이하 인구 비중은 10% 미만으로 낮아져 사회의 존속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끝났다"는 암울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1% 시대에 근접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도의 불확실성에 놓인 상황에서 6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건 다음 정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15년까지 계속된 세계경제의 장기불황보다 더 혹독하고 긴 침체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정치는 지난 10여년간 오직 정권투쟁에 몰입한 나머지 시대과제 해결을 위한 성과로는 18년 만에 최근 연금개혁에 합의한 것이 전부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시대과제를 외면하고 이념대립에 국력을 쏟을 힘도, 시간도 없다.
우리가 힘을 모아 싸워야 할 대상은 보수나 진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암담한 미래이며, 구체적으로는 인구 문제와 저성장이다. 특히 다음 정부는 대한민국이 그야말로 '끝장난' 나라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6월 대통령 선거는 진영 대결이 아니라 시대과제 해결을 위한 국민들의 진지한 대안 선택 과정이 되어야 마땅하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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