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 생활경제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 인용돼 온 유명한 이 말은 요즘 패션 플랫폼들의 생태계에 적확하게 들어맞는다. 팬데믹 특수를 누리며 성장한 명품 플랫폼 발란은 최근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반면 무신사와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카카오스타일은 지난해 나란히 흑자를 기록했고, 에이블리를 운영하는 에이블코퍼레이션은 매출과 거래액에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같은 업종, 같은 시장이 낸 전혀 다른 성적표다.
발란은 팬데믹을 기회 삼아 '명품을 싸고 빠르게'라는 전략을 내세워 외형을 키웠다. 빅모델을 앞세운 대규모 마케팅으로 눈도장을 찍고, '오늘도착' 같은 초고속 배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트래픽을 확보하고 거래액을 늘리면 언젠가 이익도 따라올 거라는 '규모의 경제' 신화를 좇았다. 효과는 있었다. 당시 넘쳐나던 유동성과 함께 국내 명품시장이 급성장하며 연간 거래액 3000억~4000억원을 기록했고, 업계 1위 플랫폼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엔데믹 이후 명품 소비가 식자 과도한 마케팅과 물류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외형 확장의 속도가 사업 체력보다 빨랐던 탓이다. 구매 빈도가 낮고, 카테고리 확장성이 크지 않은 명품 단일 사업모델의 한계도 명확했다.
그사이 무신사와 지그재그, 에이블리는 카테고리를 유연하게 확장하며 '머무는 플랫폼'이 되기 위한 전략을 폈다. 패션과 연관성이 높은 뷰티,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무신사는 뷰티 카테고리에 진출하며 자체브랜드(PB) 사업도 병행 중이다. 중고의류 시장을 겨냥해 올해 3·4분기 중 '무신사 유즈드(MUSINSA USED)' 론칭도 앞두고 있다. 자회사인 편집숍 29CM는 문구, 인테리어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카테고리를 넓혀가고 있다. 지그재그도 2021년 뷰티 카테고리를 도입한 이후 해당 거래액이 매년 두자릿수씩 성장하고 있다. 에이블리는 10대를 주 고객층으로 삼아 웹툰과 웹소설 등 콘텐츠 영역까지 확장하며 플랫폼 체류시간을 늘리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옷만 파는 플랫폼'이 아닌,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설계하는 장(場)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동시에 일상에 머무는 플랫폼이 경쟁력이 됐다. 상품 구색과 가격만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고객의 일상 가까이에 머무는 플랫폼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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