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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이혼이야기']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이혼이야기']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파이낸셜뉴스] 필자는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법리에 밝은 법조인이라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막은 채 선입견이나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면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든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 생각은 판사로 근무할 때나 변호사로 활동하는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다음은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균형감각은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면서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러한 능력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일, 가정생활과 휴식을 조화롭게 설계할 때도 필요하다. 실무로 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가장 쉽게 빠지게 되는 유혹이 바로 선입견의 유혹이다. 세상의 모든 사건에는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러나 법조인으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비슷한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편하고 익숙한 선입견, 즉 ‘이런 사건은 내가 많이 해봤는데 이런 거야’라는 식의 유혹에 빠질 때가 많다. 특히 법관의 경우에는 선입견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관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했을 때 그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법관은 소송당사자나 변호사보다 사실관계 파악에 있어 부족하거나 더딜 수밖에 없다. 판사와 변호사 모두 해본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판사가 변호사보다 핸들링하는 사건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특정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와 전후 맥락을 변호사나 소송당사자 보다 자세히 파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법관으로 많은 수의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그 사건이 그 사건 같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결론을 쉽게 도출하는 경향성이 생기고 그 경향성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다. 이 기준은 좋게 말하면 노련함으로 포장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선입견일 수 있다. 따라서 판사는 어떤 사안을 맞닥뜨리더라도 항상 그 사안을 백지 상태에서 보고 그 사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선입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어야 한다.

필자 역시 가정법원에 오래 근무하면서 결론 내리기 정말 어려운 사건들을 많이 처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나의 선입견 내지 나만의 기준을 섣불리 적용한 적은 없었는가 반성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가정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 중 재산분할 사건이 복잡하고 어렵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나 재산분할보다는 양육권에 관하여 치열한 다툼이 있는 사건들이 훨씬 어렵다. 양육권에 관하여 다툼이 있는 사건은 일반적으로 부부 양쪽이 서로 양육권을 가지겠다고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는 서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겠다는 경우도 있다. 보통 양육권에 대하여 다툼 있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혼 당사자 양쪽은 아이의 양육을 원하면서 재판부에 자신이 양육자로 적합하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엄청난 자료를 제출한다. 양육자를 정할 때는, 미성년인 자녀의 성별과 연령, 그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양육 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와 모가 제공하려는 양육 방식의 내용과 합리성⋅적합성 및 상호 간의 조화 가능성, 부 또는 모와 미성년인 자녀 사이의 친밀도, 미성년인 자녀의 의사 등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미성년인 자녀의 성장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적합한 방향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요소를 고려했을 때도 부모 양쪽이 대등한 양육적합성을 가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이혼 이후에도 양쪽이 자녀 양육을 위해 협조할 수 있다면 공동 양육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혼 이후 부부가 자녀를 공동 양육하기 위해 동거하거나 전 배우자 근처에 살면서 양육을 보조하는 상황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이혼이야기']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자녀가 둘 이상인 경우 ‘분리양육’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분리양육은 이혼 후 부부 일방이 자녀 중 일부를 양육하고 다른 일방이 다른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아들 1명, 딸 1명을 두고 있는 부부가 이혼하면서 부가 아들을, 모가 딸을 양육하는 방식이다. 분리양육은 이혼 후 부부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까지도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가정법원에서 배제하고 있는 양육방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치명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해당 가정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분리양육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자녀가 비양육자가 될 부 또는 모 내지 그 부모(아이 입장에서는 조부모)와 매우 특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때, 자녀 중 일부가 특수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부모 중 일방이 그러한 치료를 보조하기 좋은 상황일 때, 자녀들이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할 만큼 극도의 대립 관계에 놓여 있는데 부모 일방이 아이들을 모두 양육하면서 이를 조율하기 어려운 경우 등 단독양육으로 인한 불이익이 분리양육으로 인한 불이익이 보다 현저히 큰 경우에는 분리양육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자녀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경우 각자의 학교 생활 내지 학원 스케쥴로 인하여 평일에 형제자매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분리양육을 하면서 자녀들이 한주는 아빠 집, 한주는 엄마 집에서 다 같이 모인다면 결국 자녀들은 매주말마다 만날 수 있게 되어 분리양육으로 인해 야기되는 자녀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 약화는 생각보다 덜 할 수도 있다. 단독양육의 경우에도 자녀들은 비양육자를 면접교섭하기 위해 주거지에서 2주에 한번씩 외출하여야 하는데 분리양육되는 자녀들 역시 2주에 한번씩만 이동하면 되므로 물리적인 이동의 불편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필자는 17년간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민사재판 4년, 형사재판 4년, 미국 로스쿨 연수 1년을 제외한 나머지 8년 동안 가사 사건을 전담했었다. 당시 이혼, 상속, 소년심판, 가정폭력, 아동폭력, 후견사건 뿐만 아니라 유언검인, 한정승인, 부재자재산관리, 친권제한, 개명 등 가정법원에서 다루는 모든 사건들을 처리한 경험이 있는데,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으니 필자 역시 가정법원에서 다루는 사건에 대해 나름 ‘풍월을 읊는 것’ 이상의 전문성은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가정법원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소년 사건에 연루되거나, 양육자 또는 계부·계모로부터 학대당하는 사건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혼 후 아이들이 어떤 진통을 거치는지 그리고 그들의 양육 환경이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적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분리양육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데이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어떤 자리에서 가사 사건에 대해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은 다른 법조인으로부터 “양육권을 정함에 있어 분리양육은 절대(never ever)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분리양육이 원칙적인 양육방식으로서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불가능한, 존재해서는 안되는 양육 방식은 아닐 터인데 어떤 사유에서인지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을 세운 후 이를 관철하려는 태도를 보여 서두에서 언급한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필자가 언급한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2가지’ 중 균형감각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역량이지만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자세는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쉽게 견지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도 다시 한번 자신이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기를 바라며(물론 필자도 매일매일 되돌아볼 것이다) 이 글을 마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