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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운의 혁신탐구] 다수 국민이 행동해야 정치가 변한다

정치개혁·국가재건 위한
어젠다를 우리들이 설정
비전·정책제시 요구해야

[임채운의 혁신탐구] 다수 국민이 행동해야 정치가 변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탄핵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탄핵에 대한 국민의 입장은 각자 다르고, 찬반으로 갈릴 수 있다. 그러나 국정 운영의 수반인 대통령이 파면된 사건은 국가적 비극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반복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 정치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도 지적했듯이 탄핵 사건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과 패권적 국회의 끝없는 대립에 있다.

고장 난 정치체제에 사법제도의 난맥이 더해지며 삼권분립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다.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판결이 오락가락하며 일관성을 상실해 혼란을 키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1심 법원의 유죄판결을 2심 법원에서 무죄로 뒤집고 이를 다시 대법원이 유죄의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 대선 정국을 미궁에 빠뜨렸다.

최악의 경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다음에 당선인에게 유죄판결이 확정되면 다시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하는 난국이 발생할 수 있다.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대법원 판결을 사법내란으로 규정하고 대법원장을 비롯, 대법관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고려하고 있다. 행정부는 사회부총리가 '대대대행'을 맡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입법부와 사법부가 충돌하면 국정공백을 넘어 무정부 상태가 초래될 수 있다. 그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위기가 닥쳐온다.

정치권에서는 유효기간이 종료된 1987년 정치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제는 정치재편보다 더 근본적인 국가재건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제2의 건국이라 할 정도로 새롭게 대한민국의 틀을 짜는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선 후보나 정당은 국가 백년대계에 관심이 없다. 대선 공약은 장밋빛 성장론과 예산 퍼주기 일색이다. 국가적 존망의 위기에 관해 우려를 표명하며 국가개조를 외치는 후보자는 아무도 없다. 유력한 대선 후보들은 모두 강성 지지층을 대변하며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중간에 끼인 대다수 국민은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어느 진영도 속하지 않는 유권자는 최선의 후보가 아니라 차악의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문제는 누구를 선택하건 당선인은 나올 것이고, 그 대통령은 다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며 전임자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국회 다수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자기네 권력을 공고히 하여 장기집권하는 방향으로 정치체제를 개편할 것이다. 반대로 국회 소수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지난 정부처럼 국회와의 반목이 반복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총체적 난국에 처한 대한민국의 운명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 잘못하면 섣부른 정치개편이 제2의 건국이 아니라 망국의 길로 이끄는 개악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분열이 극도로 악화한 여건에서 새로운 국가체제에 대한 합의는 엄두를 내지 못하며 공론화조차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대통령과 입법부를 포함해 사법부, 검찰, 감사원, 선거관리위원회, 기획재정부 등을 망라하는 국가 최상위 권력기관을 개편하는 논의에 각 정당과 이익집단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달려들어 극한투쟁에 돌입할 것이다.

정치인에게 맡겨서는 고착화된 권력구도를 초월한 개편안이 나올 수 없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는 다수의 국민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나서야 혁명적 변화가 가능하다. 국민이 정치개혁과 국가재건을 위한 어젠다를 설정하여 대선 후보자들에게 던져주고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시민단체와 학술단체들도 중립적으로 국민의 관점에서 후보자들의 공약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과 국가개조를 이행할 수 있는 후보의 역량과 진정성에 초점을 두고 대선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이번 대선부터 시작해 앞으로의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정치개혁 이슈를 밀고 나가 정치인을 압박해야 정치가 변하고 나라가 살게 될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